관객 대다수는 영화 '판도라'가 허구적인 컴퓨터그래픽과 스토리로 원전 사고를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얻을 교훈도 있기는 하지만, 허구적 내용에 의해 묻힌 사실을 알 필요도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만 들어 보자. 첫째는, 원자로 격납 건물이 실제보다 훨씬 크고 얇아 보이게 그래픽 영상이 제작됐다는 것이다. 영화 속 발전소 모델인 고리 1호기의 경우, 격납 건물 내부에는 내압을 견디는 두꺼운 강판 용기가 있고, 외벽은 3.5㎝ 정도 굵기의 강화 철근이 촘촘하게 뼈대를 이룬 75㎝의 견고한 콘크리트로 돼 있다. 물론 이러한 구조의 격납 건물도 내부 압력이 설계 압력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면 파손될 수 있겠지만, 그 경우라도 배관이나 케이블 등이 지나가는 관통부가 먼저 부분적으로 파손될 것이므로 설사 수소 폭발이 발생한다 해도 영화와 같이 상부의 대규모 파손은 있을 수 없다. 둘째는, 격납 건물 내부의 압력 상승 과정을 너무 단순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실제 원전에 설치돼 있는 여러 단계의 비상 냉각 설비와 감압 장치, 그리고 수소 제거 설비 등의 작동을 무시했다. 낙하하는 스카이다이버를 생각해 보자. 만약 주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다면 그는 보조 낙하산을 펼 것이다. 물론 보조 낙하산도 고장이 나 안 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소에는 여러 비상 냉각 펌프와 디젤발전기, 대체 발전기, 축전지 등의 예비 전원, 냉각수 고갈을 대비한 다양한 예비 수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보조 낙하산이 4개 이상 있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4개 이상의 보조 낙하산이 하나도 안 펴진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나친 허구가 아닌가? 셋째는, 이미 격납 건물이 파손된 상황에서 원전회사 사장이 해수 투입을 반대하는 것이다. 수소 폭발로 격납 건물이 대파된 상태라면 이미 연료봉과 원자로가 손상된 상황이기에 그 상황에서 원자로를 살리겠다고 해수 투입을 금지하는 이 장면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된다. 이는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경제성을 우선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장에 대한 관객의 공분을 유도하기 위한 과도한 억지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타난 대로 비전문가의 원전 관리 책임자 임명, 재난 대피상황에서의 교통 혼란 등은 개연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수년 전에는 경영 전문가가 원전 본부장으로 재직한 사례도 있었고, 부정 청탁 기회 등을 원천 차단한다고 순환 보직제를 운영해 현장 기술자들의 전문성을 떨어뜨린 경우도 있었다. 적절한 사람을 적소에 활용하는 것은 안전성이 최우선인 원전에서 더욱 필요하다. 한편, 원자력발전소 주변에서 실제로 지역 주민이 대피해야 할 상황을 대비한 교통 통제를 포함한 재난 대피 훈련은 계획된 절차에 따라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영화 속에서와 같은 혼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더욱더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와 원전 비리 사건 이후 원자력 산업계가 국민의 원전에 대한 우려를 겸허히 수용해 안전설비를 개선하고 안전 문화 의식을 고취해 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국민은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해 안심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그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듯하다. 하지만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해 과장된 허구가 벗겨지면 불필요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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