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발전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평생 원전사업을 하면서 원자력이 값싼 에너지라는 생각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우디 지사에 부임하기 직전인 2007년에 태양광발전사업을 검토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kW당 발전단가가 원전 40원, 석탄 70원, LNG 120원, 발전차액지원 대상이었던 신재생에너지 기준가격이 태양광 710원, 풍력 110원 정도였다. (신재생에너지 가격은 산업자원부에서 고시한 금액으로 고정금액은 아니었고 매년 5%씩 감액되는 조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내 원자력 발전단가가 월등히 싼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내겐 이런 전원별 발전단가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탈원전 진영에서는 원전 사업비에 방사성폐기물처리비용이나 폐로비용, 사고복구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단가가 낮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지, 감춰진 비용을 합산하면 결코 값싼 에너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고복구비용은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했고 산출한 금액도 터무니없었기 때문에 원전 안전성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비용이 원자력 발전단가에 포함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방사성폐기물처리비용이나 폐로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확인하면 원전의 경제성 시비는 해결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벽에 부딪쳤다. ‘균등화 발전원가(LCOE,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와 ‘균등화 회피비용(LACE, Levelized Avoided Cost of Electricity)’이라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 그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서는 금년 4월 ‘균등화 발전원가 및 균등화 회피비용’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발전원가는 워낙 변수가 많고 지역과 시점에 따라서도 차이가 많기 때문에 발전방식에 따른 원가를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발전방식별로 일정한 조건에서 원가를 산출하기 위해 ‘균등화(levelization)’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예컨대 연료비는 구매 시기뿐 아니라 계약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시설에 대한 감가상각비는 적용되는 세법에 따라 달라지며, 신재생에너지에 적용되는 보조금 또한 발전방식이나 적용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까지는 이해하는데 별 무리가 없다. 문제는 ‘균등화 회피비용’인데, 사람마다 이해하는 바가 모두 다르니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균등화’라는 건 비교를 위해 조건을 같게 만든 것이니 읽는 이의 편의를 위해 이 글에서는 ‘발전원가’와 ‘회피비용’으로 용어를 줄여 쓰겠다.
USEIA 보고서에서는 “이용률, 발전방식 구성, 시설용량이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단지 발전원가만으로 발전방식의 경제성을 비교하는 것은 결과를 오도할 수 있으니 회피비용을 함께 사용하라”고 권하고 있다. 회피비용은 어떤 발전방식을 다른 발전방식으로 대체할 때 소요되는 비용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석탄화력을 풍력으로 대체할 경우 풍력 발전원가가 석탄화력의 회피비용이 되는 것이다. 어느 발전방식을 다른 발전방식으로 대체한다면 대체할 발전방식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 회피비용이 달라진다. 그런데 USEIA 보고서에는 대체 발전방식을 어떻게 구성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아마 회피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발전방식을 구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발전방식을 대체했을 때 ‘대체 발전방식의 발전원가(회피비용)’가 원래 발전방식의 발전원가보다 낮다면 당연히 새로 도입한 발전방식이 경제적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원전진영 일부 인사가 회피비용이 낮은 발전방식이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한 것은 잘못이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프레시안’을 비롯한 탈원전 미디어에서는 “회피비용이 발전원가보다 높으면 경제성이 있는 발전방식이고, 회피비용이 발전원가보다 낮으면 경제성이 없는 발전방식이다”라고 도식화하고 있다. 이 논리라면 원전은 경제성이 없는 발전방식이다.
과연 그런가? 비전문가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USEIA 보고서를 차근차근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아주 중요한 조건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어떤 미디어에서도, 누구도 지적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간헐전원인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은 기저부하로 사용되는 재래식 발전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재래식 터빈발전은 reserve margin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므로 간헐전원이 회피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전문가인 내게는 이 말이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의 발전원가가 낮을 수는 있지만, ‘간헐전원’과 ‘기저부하를 감당하는 발전방식’을 동등하게 놓고 비교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혹시 내가 오해한 것이 있으면 페친들께서 망설이지 말고 지적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This is especially important to consider for intermittent resources, such as wind of solar, that have subsequently different duty cycles than the base-load, intermediate, and peaking duty cycles of conventional generators. Combustion turbines are generally built for the capacity value to meet a reserve margin rather than to meet generation requirement and avoided energy costs.)
내용을 살피던 중에 탈원전 미디어에서 원자력에 비해 풍력이나 태양광이 훨씬 경제성 있는 발전방식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자료가 잘못된 것을 확인했다. ‘프레시안’과 ‘탈핵신문’에서 원자력은 발전원가가 회피비용보다 높아 경제성이 없고 풍력과 태양광은 두 값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회피비용이 높아서 경제성이 있는 발전방식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인용한 발전원가가 내가 확인한 값과 달랐다. 살펴보니 두 미디어에서 인용한 발전원가는 보조금을 반영해 그만큼 원가를 낮춘 금액이었다. MWh당 풍력 발전원가를 52.2달러, 태양광 발전원가를 66.8달러로 밝혔는데, 보조금을 제외할 경우 발전원가는 풍력이 63.7달러, 태양광이 85달러가 되어 두 발전방식 모두 경제성이 없는 것이 된다. 보조금이 없는 원전과 대비하자면 풍력발전이나 태양광발전 모두 보조금을 제외하고 비교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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