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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탈원전 5] 국내원전의 지반안정성
  • 작성자 박인식 (bec@5483) (DATE: 2017-09-14 05: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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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엽적인 지식을 가지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원전의 안전성을 거론하자니 매우 조심스럽다. 우선 아는 분야인 지반안정성(site stability)부터 살펴보겠다.

 

1956년 영국 콜더 홀 원전이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원전은 총 580기가 건설되었고 현재 449기가 운전되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지진으로 인해 원전이 파괴되거나 피해 입은 사례를 찾지 못했다. 적어도 지진에 관한한 모든 원전은 안전하다는 것이다. 원전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는 지진으로 인한 지반진동(vibratory ground motion)을 정확하게 산정해야 하고, 모든 시설이 산정된 크기의 지반진동에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며, 설계한 대로 시공해야 한다. 40년 가까이 원전건설에 간여해온 사람으로서 적어도 우리 원전은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고 있으며, 그것이 원전의 상업운전이 시작된 이래 관련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지진학자 중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지진보다 규모가 더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판단할 만큼 아는 게 없다. 그런 주장을 펴는 학자 중 몇몇은 아는 이들이니 만나면 설명을 부탁해보리라. 아무튼 지금까지는 역사지진과 계기지진을 통틀어 최대 지진이 같은 위치에 다시 일어난다는 가정 아래 내진설계기준(지반진동가속도)을 결정하고 있다. 지진 때문에 원전이 피해 입은 사례가 없다는 것으로 내진설계기준을 넘은 사례가 없다고 유추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우리나라의 역사지진기록은 2천 년이 넘는다. 나는 지난 2천 년 동안 일어난 지진보다 규모가 더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연을 수치화하는 작업에서는 수많은 안전율이 적용된다. 자신이 없으니 넉넉하게 계산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기초지반의 허용지내력은 최대지내력의 1/3로 잡는데, 이럴 때 안전율을 3으로 적용했다고 표현한다. (3배 안전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땅이 평방미터 당 90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측정되었다면 이 땅 위에 짓는 구조물의 무게는 평방미터 당 30톤을 넘을 수 없도록 한다는 말이다. 최대지내력을 측정하는 과정에서도 가능한 보수적(안전한 쪽)으로 평가한다. 내진설계기준을 결정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지반진동가속도를 결정하고 나면 이를 기준으로 내진설계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수많은 안전장치와 안전율이 적용된다.

 

실제로 일본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전, 미국 노스아나 원전은 내진설계기준을 2배 넘게 초과한 지진에도 원전을 안전하게 정지시킬 수 있었다. 동일본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과 오나가와 원전 역시 내진설계기준을 넘는 지진이 일어났지만 원전을 안전하게 정지시키는 데 문제가 없었다. (양재영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교수, 2017.08) 이 경우, 비록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진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지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니 위의 전제가 틀린 셈이다. 재발할 수 있는 지진의 규모를 잘못 산정한 것인지, 지진 규모는 제대로 산정했는데 내진설계기준을 잘못 선정한 건지는 확인이 필요하겠다. 우리의 경우, 신고리 3,4호기부터 규모 7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기준(지반진동가속도)을 0.3G로 설정했으며, 그 이전에는 규모 6.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0.2G로 책정하였다. 국내 최대지진인 경주지진이 일어났을 때 인접한 월성원전에서는 지반진동가속도가 0.12G로 측정되었고, 다소 떨어진 고리원전에서는 0.038G로 측정되었다. 이렇게 원전이 충분히 안전하게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국내 모든 원전의 내진설계기준을 0.3G로 상향 조정하여 보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예를 든 내진설계기준을 넘는 지진이 발생한 사례도 상향 조정에 고려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원전은 사고가 일어나면 그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에 최악의 조건을 상정하여 평가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를 쓰는 것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탈원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 중 지진으로 인한 위험성은 억지를 넘어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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