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기후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신규 원전 건설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신규원전 건설을 공식화했다. 불과 4일 후인 30일 한수원은 신규원전 후보부지 유치 공모를 개시했다. 당초 예정보다 6개월이 지체된 탓이기도 하겠지만 평소 한수원의 일처리 속도에 비해 광속 행보다. 대상 부지는 1.4GW 규모 대형원전 2기와 0.7GW SMR 1기다. 유치를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는 다음 달 30일까지 관련 서류를 한수원에 제출해야 한다.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부지 적정성과 환경성, 건설 적합성, 주민 수용성 등 4개 항목에 대한 평가를 시행한 후 6월 말 이전에 후보부지를 선정하게 된다.
앞서 원자력계는 이번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에너지믹스 정책 발언에 혼란스러워 했고 원전 산업계는 신규투자를 멈춘 상태였다. 인사청문회에서 기후부 장관은 11차 전기본의 신규원전 건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했지만,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신규 원전 착공은 현실성이 없다고 했었다.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그로부터 몇 달 후 기후부 장관은 신규 원전들도 재논의를 거쳐 추진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친원전, 반원전 양측 모두 재논의의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국민에게 물어보겠다는 정부의 뜻은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정책토론회’에서부터 확인되었다. 특히 2차 정책토론회는 우리나라 계통현황, 원전의 경직성 완화, 재생에너지 간헐성 보완방안 등 발제내용을 균형 있게 배치함으로써 신규원전 건설 여부를 국민 각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했고 이어진 여론조사도 두 개의 조사기관에 의뢰함으로써 공정성을 기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국민들은 ‘우리나라에 원전이 필요하다’에 갤럽은 89.4%, 리얼미터는 82.0%,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반드시 또는 가급적 추진해야 한다’에 각각 69.6%, 61.9%로 응답했다. 반대의견은 찬성의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민들의 선택을 기후부 장관은 “AI 혁명 등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두 축으로 하는 에너지 믹스가 필수적”이라고 표현했다. 에너지 믹스 관점에서 다행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에너지 믹스 정책에 대한 논쟁이 복잡한 이유 중 상당부분은 정부나 또는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에너지 믹스 결정은 결국 전기요금과 전력계통의 문제(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로 귀결되는데 이에 대해 알려주지 않거나 터무니없는 자기주장들만 하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회도 에너지믹스 변화가 전기요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설명 없이 진행되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특히 재생에너지가 화력에너지를 대체하는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확대될수록 출력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비용은 빠르게 증가한다. 단주기 변동에 대응하는 계통 보강, 잉여전력 처리를 위한 저장장치(ESS) 투자, 출력제어에 따른 보상비용 등은 모두 재생에너지 확대가 유발하는 추가적인 시스템 비용이다. 이러한 비용은 개별 발전원의 발전단가(LCOE)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전력계통 전체에서는 무서운 수준으로 누적된다. 독일이 2023년 이후 -0%대의 최악의 경제성장을 경험한 이유가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 모범국이 되고 난 후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메르츠 독일 총리는 최근 “탈원전은 심각한 전략적 실수였다.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어려운 에너지 전환을 자초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제 공은 한수원과 원자력계로 넘어왔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신규원전도 갈 길이 멀다. 부지 선정에서부터 환경영향평가 및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실시, 건설허가 취득, 운영허가까지 그리고 원전 건설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 지역사회와의 신뢰형성 등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단계가 하나도 없다. 치밀한 사전 검토와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성공적인 SMR 기술 개발, 원전 건설 공기 관리, 12차 전기본 대응 그리고 늘 따라다니는 이슈인 원전의 사후처리 문제들이 그것이다.
“전력 분야 탄소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 중심의 전력 운영이 필요하고 3기 이상 추가 건설도 가능하다” 기후부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희망이 커지면 부담도 같이 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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