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간 세계 경제를 이끌어온 자유무역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범한 GATT(국제무역협정)는 관세와 무역장벽을 낮추며 ‘무역이 평화를 보장한다’는 신념을 확산시켰다.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 출범과 함께 세계는 사실상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고, 자본과 기술·노동이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흐르던 시기가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그 시절은 ‘효율성’이 절대 선(善)이었다.
한국은 이 자유무역의 최대 수혜국이었다. 수출 입국을 내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국을 자유무역 질서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여기서 출발한 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수출 없이는 생존도 없다’는 절박함과 함께 개방의 폭을 넓혀 나갔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후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한·미, 한·EU 등 전 세계 50여 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며, 한국은 글로벌 FTA 네트워크를 가장 넓게 구축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자동차·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은 자유무역 파도 위에서 세계 시장을 누비며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됐다.
그러나 이 황금기는 지나갔다. 2016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자유무역의 균열을 상징했다. ‘미국우선주의’ 아래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세계 공급망의 분리를 촉발했다. 여기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더해지면서 각국은 자국 내 생산과 비축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2022년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와 식량 안보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지원법,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는 새로운 보호무역 시대를 공식화했다.
이제 세계는 ‘효율’보다 ‘안보’를 중시한다. 과거의 자유무역이 비교우위에 따라 생산지를 나누던 시스템이라면, 지금은 전략적 자율성이 핵심 키워드다. 산업·기술·에너지·원자재를 자국 또는 동맹국 내부에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반도체·배터리·희토류 등 핵심 산업은 단순한 시장재가 아니라 국가 안보 자산이 됐다.
보호무역이 강화됨에 따라 에너지 비용이 단순한 가격 요인을 넘어, 산업 경쟁력·무역장벽·안보 리스크와 직결되는 문제가 됐다. 자원 수입국은 에너지 확보 비용이 높아지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 에너지 안보를 스스로 확보한 국가 즉, 미국(셰일가스, 원유 자급), 프랑스(원자력 비중), 노르웨이(석유·가스 수출국)는 보호무역 시대에도 에너지 비용 충격이 적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제조업 국가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곧바로 수출품 단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보호무역의 핵심 대상은 제조업이다. 관세로 보호하면서 고용 창출까지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조업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라는 데 있다. 결국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나라가 경쟁력을 가진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전기·청정에너지 보조금을 확대하며 제조업 리쇼어링을 지원하는 정책이 이런 목적이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도 같은 전략이다.
결국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제공하는 정책이 무역전쟁 시대에 핵심적인 국가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OECD·NEA(국립환경청)와 IEA(국제에너지기구)도 이런 맥락에서 ‘안보 가치’, 즉 안보성이나 공급 안정성 개념을 원자력 및 무탄소 전원의 가치 평가에 포함했다.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최상위권인 우리나라는 보호무역 시대 속에서 경쟁국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리하다. 결국 안보성·경제성·환경성이 높은 전력 확보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그런 조건을 만족하는 전원이 바로 원자력이다. 원자력 확대가 보호무역 시대를 넘는 힘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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