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 '스톱' 탈핵 '스타트'] 3. 고준위폐기물 처리장 더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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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폐로 핑계 떠넘기기 안 돼, 계획 다시 세워야"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중수로용 사용후핵연료 조밀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의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고리1호기 폐로를 앞두고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2025년까지 고리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완료해 고리원전 내 신설된 건식저장소에 보관하는 구상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에 강력 반발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핵쓰레기' 처리 문제 재부상
고리원전 전체 5903다발
2024년엔 '포화 상태' 도달

고리1호기 건식저장소 신설
한수원, 폐로 기회로 추진

"영구처분시설 될까 우려"
기장 주민·시민단체 반발
새 정부 '탈원전' 공약 맞춰
공론화 과정 다시 밟아야

■고리1호기 폐연료봉 어디로 가나

한수원의 '2017년 1사분기 사용후핵연료 저장현황'을 보면 고리 1호기 저장조에는 현재 364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돼 있다. 고리원전 전체(고리 1~4호기, 신고리 1·2호기)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5903다발로 포화율이 73.8%에 이른다. 한수원은 오는 2024년께 고리원전 모든 저장조에 사용후핵연료가 가득 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부와 한수원은 고리1호기 폐로를 기회로 원전 부지 내에 건식저장소 신설을 추진 중이다.

우선 고리1호기 저장조에 담긴 폐연료봉은 2024년까지 냉각 과정을 거친다. 이후 폐연료봉을 반출해 건식저장소로 옮기겠다는 것. 어차피 2024년이 되면 고리원전 내 모든 저장조 포화율이 100%에 이르기 때문에 고리1호기의 사용후핵연료를 다른 원전 저장조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게 한수원의 설명이다.

고리원전에 들어설 건식저장시설은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에 있는 '맥스터(조밀건식저장)'와 같은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수원은 별도의 입법 절차 없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에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하고, 원안위가 이를 승인하면 건식저장시설을 짓는 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건식저장시설을 짓기 위해 지역 주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면서도 "현 상태에서 건식저장시설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핵쓰레기 못 받는다"

산업부와 한수원의 건식저장시설 계획에 부산 기장군 주민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건식저장시설은 임시 시설로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건식저장시설이 사실상 중간저장시설 또는 영구처분시설로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새로 건립되는 건식저장시설에 다른 원전에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까지 반입될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고리1호기 건설 때부터 기장 일대가 원전지역이 되면서 주민들이 감내한 손해가 막심한데, 이제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까지 떠안아야 할 처지에 놓이자 주민들이 격앙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건식저장소 설치는 제3의 지역 공모를 통해 결정해야 할 문제다"면서 "정부가 이 문제를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고 경고했다.

반핵단체는 정부와 한수원이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고리1호기 폐로를 기회로 속전속결로 해결하려 한다는 의구심도 내비치고 있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건식저장시설 설치가 간단해보이지만 경수로용 시설은 처음 짓는 것이기 때문에 설계를 새로 해야 한다"면서 "이 문제를 폐로에 얹어서 어물쩍 넘기려 한다면 노후 원전 폐로 때마다 극심한 사회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 로드맵 다시 짜야

정부는 지난해 7월 턱밑까지 차오른 국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과 '미래 원자력시스템 기술개발 및 실증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는 한편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에너지원으로 다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정부는 2028년까지 고준위폐기물 영구처분장을 최종 선정하고, 2035년부터 중간저장시설이 가동한 뒤 2053년에는 영구처분시설을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국회에 '고준위폐기물 관리 절차법'을 제출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과거 정부와 판이하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 기본계획도 수정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40년 이내로 '탈원전'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사용후핵연료 계획도 새로 짜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처장은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만드는데 53조원이 든다는 비용 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면서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공론화 과정도 다시 밟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새 정부 공약에도 고준위폐기물 기본계획을 재검토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공약 이행을 위해 기존 계획을 다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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