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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원자력안전규제는 갑(甲)이 아니다

규제는 권리를 제한하는 활동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원칙적으로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려는 것이 공공의 위해가 될 수 있다면 우리의 권리는 제한되는 것이 맞다. 원자력안전규제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건강과 환경’에 나쁜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면 그 권리는 제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규제자는 사업자의 권리를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는가? 아니다. ‘대중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는 목적으로만 가능하다. 안전하게 한답시고 원자력안전규제가 공공적 목적을 넘어서 무한한 요건을 부과하는 것은 과규제가 된다. 규제자가 사업자의 상전이나 갑(甲)도 아니다. 역할이 다른 것뿐이다. 도리어 사업자의 자유를 제한하고 침해하는 것에 대해 미안하고 조심스런 태도를 가져야 한다.

페어게임(Fair game)이라는 원칙도 있다. 게임의 규칙을 미리 정하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게임을 해야 한다. 게임 중에 임의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면 안된다. 사업자가 규제의 소요되는 자원과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예측해 보고 사업상의 이득과 비교하여 순이득이 되어야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규제가 예측한 범위를 넘어서서 사업상의 손실을 입힐 정도가 된다면 곤란한 상황에 이른다. 그래서 법과 규정을 미리 만들어서 사업자가 규제의 심도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규제가 난데없이 강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사업상 비용이 발생한다면 규제가 상업적인 질서를 저해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규제가 낮았는데 이행의 과정에서 사업자가 동의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자꾸 강화되고 법에도 없는 것들을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조를 어떤 크기로 할지에 대해 최소요건은 있지만 최대요건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어느 담당자가 60년 치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도록 설계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건 게임의 규칙을 임의로 바꾼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사업자도 이런 무리한 주문을 수용하면 안된다. 특히 공공사업자는 그렇다. 자기 자신은 규제자와 맞서는 불편함을 면하겠지만 그 결과 국민은 쓸데없이 비싼 전기를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는 균형이다. 사업자와 규제자에게도 균형이 있다. 규제자가 강하면 안전한 전기가 나올 것이고 사업자가 강하면 값싼 전기가 나온다. 팽팽한 균형상태가 최적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이루는 상태가 되며 국민에게 가장 좋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자가 규제자에게 제기하고 따질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규제자는 무조건 주문하고 사업자는 이에 따르기만 하면 왕과 신하가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성이 힘들어진다.

현장에서 규제를 수행하는 담당자마다 규제의 심도와 의견이 다른 것을 조정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도 곤란하다. 사업자가 어디에 맞추라는 말인가? 규제기관 내부에서 담당자마다 다른 규제행위를 하도록 놔두는 것은 규제의 독립성이 아니라 골목대장이 된 규제자를 방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규제기관 내에서 적정성을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기관장이 조직관리를 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이다.

월성 원전부지 폐수 배출구 근처에서 삼중수소 농도가 높은 물이 발견되었다. 이 물은 배출할 때 방사성 농도측정을 하기 때문에 방사성 농도가 높은 상태에서 배출될 우려는 없다. 또 당시 부지주변 관측정의 물 시료는 삼중수소 농도가 높지 않았다. 그렇다면 고농도의 삼중수소수가 환경으로 유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대중과 환경을 보호하면 되지 사업자를 보호하는 것은 사업자 스스로의 몫이기 때문이다. 작업자의 피폭선량제한치만 넘지 않도록 감시하면 될 일이었다. 이에 대해 규제가 간여하고 또 민관합동기구를 설치하여 다루도록 한 것은 선이 넘는 일이었다. 우리 원자력안전규제가 항상 목적과 원칙을 염두하면서 수행되기를 바란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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