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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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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셀 수도 없다'는 가짜 뉴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1.23 13:05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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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10여년 전 일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주장하는 서적이 다수 출간됐다. 학술서적도 아니었고 같은 주장이 여기저기 반복되는 이런 책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약간의 사실에 감정을 자극하는 거짓들로 포장된 것 들이다. 이런 책들이 탈원전 정책의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당시 ‘한 권으로 꿰뚫는 탈핵’이라는 제목의 두꺼운 책을 골랐다. 원전을 반대하는 주장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여러 권을 읽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가장 두꺼운 책으로 골라서 읽어봤다. 이 책은 천주교창조보존연대가 여러 저자의 글을 엮어서 발간한 것이다.

이 책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셀 수도 없다’고 기술돼 있었다. 후쿠시마에서 쓰나미로 인해 약 2만 명이 사망했지만 원전 사고나 방사선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는 없다. 사망자가 없으니까 셀 수 없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셀 수도 없다’는 표현은 참말인가 거짓인가. 팩트는 맞다. 셀 수 없다. 그러나 그 글을 읽은 느낌은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다는 느낌이지 사망자가 없어서 셀 수 없었다는 느낌이 아니다. 진실은 아니다.

‘후쿠시마와 주변의 광대한 지역은 인간이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죽음의 땅과 생태환경이 되고 말았습니다’라는 표현도 있다. 지금 후쿠시마 지역은 97% 이상 복구돼 사람들이 돌아와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자의 원래 글에서 복구가 불가능한 땅으로 묘사돼 있다.

‘지금도 사고가 난 핵발전소에서는 하루 400톤 이상의 방사성오염수가 흘러나와 태평양을 죽음의 바다로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라는 말도 지나치다. 400톤이라는 물의 양은 전체 바닷물의 1경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류한 방사성물질의 영향은 우리나라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죽음의 바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강우일 주교는 더욱 가관이다. 성경을 인용했고, 이 글은 책의 겉 표지에도 장식돼 있다. 신명기 30장 19절의 구절이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선택하여라.’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은 현실의 생명이 아니라 영생을 말하는 것이다.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주교님이 필자보다 성경공부를 많이 하셨겠지만 의도가 나빴다. ‘2012년 4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 YMCA연합 등 10여개 기독교 단체들이 만든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그리스도인 연대’도 고리핵발전소 폐쇄 기도회, 탈 핵 교재 발간, 한일평화콘서트 등을 추진하며 탈 핵운동을 펼쳐왔다’ 이런! 탈핵이 신의 계시라는 말인가?

"수컷 쥐에게 5그레이(Gy)를 조사한 뒤 정상 암컷과 교배시켜 그 새끼를 보니, 종양 발생빈도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5그레이는 체중이 훨씬 많은 인간에게도 치사량 수준의 엄청난 양으로, 이정도 양이면 쥐에게 종양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5그레이는 일반인은 평생 경험할 수 없는 수치다. 그 만큼을 쥐에게 조사하니 종양이 발생했다는 것은 상상의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다.

‘핵발전소 수출 산업에도 주력해 아랍에미리트(UAE)와 핵발전소수주 계약을 계기로 80기 핵발전소 수출전략을 발표하는 등 시대 역행적 산업에 예산을 쏟아부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그게 맞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전은 EU 택소노미에 포함됐고,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자연조건이 안되는 나라에는 채택할 수 없는 수단이고, 자연조건이 되는 경우라도 필요에 따라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원자력발전의 10배의 가격을 주더라도 늘린다면 늘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 결과가 지금 전기요금을 50% 인상하고도 한전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들이 부도덕하다고 본다. 거짓을 말했거나 자기도 알지 못하는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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