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성 前 IPCC 의장 “COP28 핵심은 ‘원전’ 언급…기후변화史 변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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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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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성 전 IPCC 의장. /남강호 기자

“‘원자력(Nuclear)’이 무(無)탄소 내지는 저탄소 기술로 국제사회에서 전면에 언급된 것이 기후변화 역사의 큰 변곡점이 될 겁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한국·미국·프랑스·영국·일본 등 22국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50년까지 세계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의 3배로 확대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적시했다. 국제사회가 탄소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해 원전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COP28 폐막 이튿날인 지난 14일(한국시각) 이회성 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의장은 본지 통화에서 “과거 COP와 이번 COP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자력’이란 단어가 COP 사상 처음으로 언급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것은 의미심장한 변화”라면서 “세계인이 원전 산업 그리고 온실가스 저감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일본 UN 대학 기조강연차 도쿄에 머물고 있던 이 전 의장은 “COP28 폐막 후 사람들의 관심이나 언론 보도가 주로 화석연료의 감소 또는 퇴출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며 “그러나 오히려 핵심은 그간 기후변화 논의에서 버림받았던 원전이 청정에너지로 언급된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간주하고 탄소중립에 활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유럽을 포함해 세계 각국은 이견을 보여왔다. 그런데 결국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에너지 믹스(mix)’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흐름이 결정됐다는 것이다. COP28에서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원자력이 다른 모든 에너지원의 완전한 대안이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겠지만, 원자력 없이는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원자력 에너지는 기후 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라고 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서 협상 타결안 초안이 공개된 후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에너지부가 공개한 22국의 원전 관련 선언문에 따르면, 22국은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로 유지하는 데 있어 원자력에너지의 역할이 핵심적임을 인정했다”고 했다. 22국은 소형모듈원전(SMR) 등 첨단 원자로 개발과 건설을 장려하고, 원전 도입을 모색하는 국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 협의에 대해 여전히 반대하는 국가도 있지만, 이런 ‘원전 동맹’이 탈(脫)탄소로 나아가는 국제 흐름에서 큰 축이 된 것을 부정할 수 없어진 셈이다.

우리나라처럼 국토 면적이 좁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에 한계가 있는 나라에선 지형적 한계를 극복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원전이 꼽힌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펴며 이 같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전 의장은 ‘원전의 전면화’에 이어 이번 COP의 핵심으로 국제사회가 철강·시멘트·석유화학을 ‘탄소감축 우선순위 부문’으로 언급한 것을 꼽았다. 이들 산업은 탄소 감축 신기술 개발이 가장 더딘 분야이면서도, 향후 개도국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용량을 급격하게 늘릴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탄소 감축을 명분으로 선진국이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발목을 잡을 수 없기에 기후변화 대응의 최대 난제로 꼽히지만 그동안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덮어왔다. 이 전 의장은 “이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린 것은 아주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COP28 최종 합의문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막판까지 첨예한 갈등이 빚어진 데 대해선 “화석연료의 퇴출 여부는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고 꼬집었다. “화석연료는 단지 자원일 뿐, 어떤 자원을 영구 퇴출하느냐에 몰두할 게 아니라 그 자원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탄소를 어떻게 잡을지가 논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은 “예컨대 소가 메탄가스를 엄청나게 배출하고, 쌀 농사지을 때도 메탄가스가 많이 나온다”며 “이 논리대로면 소도 지구에서 단계적 퇴출을 시켜야 하고, 쌀 농사도 짓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고 부연했다.

이 전 의장은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화석연료를 대체해 재생에너지, 원전, 수소가 활용되고, 여기에 CCUS(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까지 더해 어떤 에너지 자원을 쓰든 거기서 배출되는 탄소를 잡는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며 “탄소에 집중하지 않고 자원에만 집중해 ‘단계적 퇴출’ 같은 논의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문제해결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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