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성공 조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3.12.14 08:48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장/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장

2023121501000811600039081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장/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장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이 중대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수립 중이기 때문이다. 전기본은 향후 15년 동안의 전력수급 기본방향과 전망, 전력설비계획, 전력수요관리 계획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국가 전력정책으로 2년마다 수립된다. 과거 5년마다 수립되던 ‘에너지기본계획’은 지난 정부에서 폐지됐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른 계획은 분명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제11차 전기본에 대한 국민과 에너지 업계의 관심이 높은 이유다.

지난 정부때 시작해 현 정부에서 마무리한 제10차 전기본은 두 정부 간의 입장 차이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됐다. 특히 수요 예측, 전원 구성 등 세부 사항과 부족한 근거 자료에 대한 비판이 컸다. 제11차 전기본은 더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국민적 공감을 얻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하게 밝히고, 최고의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에너지 환경 및 수요 변화, 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예측해 확실한 정책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는 이해관계자 뿐 아니라 국민과도 적극적이고 투명한 소통을 통해 신뢰와 공감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정책은 환경, 안보, 산업, 기술 정책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므로 데이터와 과학을 기반으로 통합적인 관점에서 수립돼야 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며 재생에너지 일변도의 에너지전환을 추진한 독일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경제성· 환경성(탄소중립)·안전성 등을 고려하고,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무탄소 전원을 균형 있게 활용하겠다는 제10차 전기본의 기본방향은 적절했다. 전력망 보강과 전력시장 개편 등 전력수급기반 강화를 강조한 점도 타당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방향이 실제 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으므로 제11차 계획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데이터들을 철저하게 수집하고 분석해 널리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수집되는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수집된 데이터를 검증하고 정리해 공유하는 체계도 부족하다. 이로 인해 에너지 전문가들조차 다른 분야를 피상적으로 이해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에너지 경제와 기술 분야 사이, 그리고 기술 분야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종 위원회에서 전문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는 결국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특정 기관에서 마련한 초안을 부분적으로만 수정하는 수준의 부실한 계획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에너지 관련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확보하고 공유해야 한다. 현재 여러 기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보고서와 일부 실시간 데이터가 있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다. 에너지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기관을 지정하고, 각 기관의 비공개 데이터를 포함해 국가 에너지 정책 수립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검증하고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최신 데이터 처리기술을 활용하면 데이터의 수집, 분석, 공개의 질과 양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계획 수립에서는 각 위원회에서 정책 방향을 정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렇지만 기초자료를 분석해 계획 초안과 근거자료를 마련하는 전문가 그룹 또는 기관의 실질적 역할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이러한 기초자료 분석과 정책 초안 작성에는 에너지 경제, 에너지원 기술, 전력시스템 기술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전기연구원, 원자력연구원, 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협력 연구를 통해 데이터와 과학 기반의 에너지정책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제11차 전기본의 수립 과정을 우리 국민의 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에너지 정책이 포퓰리즘에 좌우되거나 정권에 따라 춤을 춘다면 머지않아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정부와 전문기관들은 신뢰도와 가독성이 높은 에너지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공개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에너지 전문가와 소통 전문가들이 대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 또한 다양한 강연과 지식 채널, TV 토론, 지상 토론 등을 통해 객관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에너지 문제는 우리와 우리 후손과 인류의 미래에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과학에 기반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우리나라 에너지 백년대계의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정훈식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