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소중립, RE100보다 CF100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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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건 RE100 준수 어려워
원전 활용한 CF100 활용해야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대선 후보 토론에서 장학퀴즈식 질문으로 유명해진 RE100을 주제로 한 국제회의가 지난 2일 열렸다. RE100 캠페인을 이끄는 영국의 비영리법인 CDP위원회와 더클라이밋그룹은 탄소중립을 위한 RE100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나, 전문가들은 각국이 처한 천차만별한 에너지 여건을 고려해 좀 더 유연한 탄소중립 방안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대안으로 CF100을 제시하기도 했다.

RE100, CF100은 모두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앤다는 기업 차원의 자발적 목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의 종류와 인정 기준은 크게 다르다. 재생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RE100은 재생에너지만을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수단으로 인정하지만 무탄소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CF100은 재생에너지뿐만 아니라 원자력도 중요 수단으로 인정하는 차이가 있다. 또한 RE100은 석탄발전소의 전기를 사용해도 연간 사용량만큼의 재생에너지를 구매해 인정받는 상쇄 메커니즘이 허락되는 데 비해 CF100은 매 순간 사용되는 에너지를 모두 무탄소에너지로 조달해야 인정받는다.

어떤 목표가 더 어려운지는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배출 저감 수단에서는 원자력을 사용할 수 있는 CF100이 좀 더 유리하지만, 목표 달성을 연간 단위로 정산하는 RE100이 실시간으로 무탄소에너지 수급을 맞춰야만 하는 CF100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표 달성의 난도는 개별 국가가 처한 에너지 여건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RE100에 매우 불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럽과 북미 등에 비해 일조량, 바람의 양과 질이 모두 부족하고 부지 제약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가격은 둘째 손 치고 아무리 쓰고 싶어도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없다고 기업들은 토로한다. 실제로 국내 전력소비량 상위 30개 기업의 최근 5년 전력사용량 평균은 10.3GWh인데 지난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4.3GWh에 그쳤다.

현 정부는 최근 우리의 에너지 여건을 고려해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30.2%에서 21.5%로 낮추고, 원전 비중 목표를 23.9%에서 32.8%로 상향 조정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을 재생에너지와 함께 탄소중립의 중요 수단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는 탈원전 정책으로 말도 꺼낼 수 없던 CF100에 우리 기업들이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수단을 구분하지 않으려는 탄소중립 흑묘백묘론이 힘을 받는 추세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그린택소노미에 원전을 추가했고, 미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원전 발전량과 신규 원전 설비투자에 대해 세액공제까지 제공하며 원전 확대를 꾀하고 있다. 탄소중립 수단을 재생에너지로만 국한하고 있는 RE100을 넘어 모든 수단을 포괄하고 있는 CF100이 대세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배경이다.

우리 기업들이 CF100을 통해 탄소중립 파도를 넘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재생에너지에 국한된 직접전력거래(PPA)를 원전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기업의 CF100 달성을 위해서는 원전의 PPA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원전 PPA를 통해 원자력 전기를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전력의 재무 개선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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