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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 국정농단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5.08 18:38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국정농단은 국정(國政)과 농단(壟斷)의 합성어다. 국정은 나라의 정치를 말하고, 농단은 정보를 이용하여 이익이나 권리를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정농단은 권리를 독점하여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는 뜻이다. 다음은 정부가 지원하여 수립하고 있는 어떤 에너지정책 보고서의 서론 부분에서 원전 시장을 기술한 내용이다.

1970년 이후 원자력발전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전력 믹스(Mix)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2017년 현재 전 세계에서 총 447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운영 중이며 글로벌 전체 발전량의 11.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인도-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원전 선도 국가는 원전 유지 또는 축소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대표적인 원전 국가인 프랑스의 경우 현재 원자력 발전 비중이 75%에 이르나, 최근 원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한, 독일-벨기에-대만의 경우 2020년대 중반까지 원전 100% 폐지 추진 중이다. 이러한 주요 국가들의 향후 계획 감안 시 2030년까지 약 160GW의 추가 원전 건설 전망되나, 많은 불확실성 존재하며 시장 축소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원전 선도 국가는 원전 유지 또는 축소 입장을 보이고 있다’라는 표현을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사실은 대부분의 국가는 원전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국가가 원전 축소로 정책을 선회한 것이다. 그런데 ‘유지 및 축소’를 같이 묶어서 전체적으로 원전을 축소하는 것이 대세인 양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례로 들은 독일, 벨기에, 대만이 원전 폐지 정책을 선언한 국가이지만 이는 사례가 아니라 예외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와 예외는 다르다.

160GW(기가와트)의 추가 원전 건설은 신규원전 160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동 중인 원전이 500기 정도임을 감안하면 원전 시장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인이 1GW가 원전 1기에 해당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하였고 시장 상황의 불확실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인데 이것을 덧붙여서 부정적인 느낌이 나도록 기술한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도 미세먼지 때문에 석탄화력발전 폐지를 선언했지만 신규건설만 하지 않을 뿐 당분간 석탄발전은 유지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경우 대선 공약으로 원자력 발전 비중을 현재의 75%에서 50%로 축소하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지만 기존 시설을 수명기간 동안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원전을 한꺼번에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

현황-문제점-개선방안이라는 단순하고도 명료한 방식으로 일하는 관료를 위한 보고서에서 서론은 결론에 대한 예고편이다. 어쩌면 결론을 내어놓고 이에 꿰어맞춰서 서론이 작성되기도 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가동원전은 증가하였다. 또한 이것이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핀란드, 미국, 프랑스 등에서 원전이 건설 중이고 영국은 이미 대규모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이 원전 시장이 쇠퇴하고 있고 대부분의 국가가 원전 폐쇄를 결정한 듯한 인상으로 보고서가 작성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거짓자료를 입력하면 잘못된 정책이 나온다. 거짓 여론을 형성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거짓은 여러 가지다.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은 당연한 거짓이다.

물론 사실에 바탕을 두고도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또한 신재생에너지와 같이 현실적으로는 경제성도 기술성도 없지만 먼 미래에 달성될 것을 마치 금방 달성될 것처럼 해서 공공재원의 투자방향을 틀어버리는 것도 옳지 않다. 이런 보고서를 통하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원 그리고 수출의 효자상품이 될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원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국가의 투자 결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것이 국정농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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