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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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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탄소중립 모범국’ 독일의 에너지 위기가 주는 교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2.08.02 10:39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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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쿠바는 석유공급 부족으로 국가 경제 자체가 붕괴, ‘아포칼립스 급’의 재앙을 겪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소련 붕괴 이후 쿠바 석유 수입 70% 이상 감소로 인한 식량부족 사태로, 심지어 1994년 쿠바 국민의 평균 몸무게가 9kg 정도 줄었다. 그만큼 석유공급 부족 사태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파괴할 수 있는 무서운 힘이 있다. 하지만 최근 탄소중립 바람에 사실상 그 두려움 자체가 완전히 잊히는 듯하더니, 최근 다시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건이 터졌다.

지난달 27일부터 러시아가 밸브를 잠가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1 가스관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량을 용량 대비 20% 수준까지 줄이면서 가스 수요의 5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던 독일은 비상사태에 빠졌다. 지난 6월 이미 가스 공급 비상경보 2단계(Alarm Phase)가 발령되었지만, 올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저장용량 대비 80% 재고 확보가 사실상 어려워져, 정부가 에너지 사용을 직접 통제하는 비상경보 3단계(Emergency Phase) 격상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4인 가족 기준 최대 132만원까지 가스요금 인상이 이미 확정되었고, 수 십만원 이상의 전기요금 인상도 불가피해졌다.

지난 26일에는 내년 3월까지 유럽연합(EU)역내 가스 사용 15% 감축안이 의결됨으로써 산업용 가스 수요부터 강제적으로 줄이는 조치도 예정되었고, 심지어 올 겨울 천연가스 배급제도 검토 중이다. 올 겨울 혹한이 예년보다 매섭다면 독일인들의 고통은 그만큼 커질 수 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독일은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석탄발전 퇴출·재생에너지 발전비중 80%(작년 46%) 확대 등 가장 선도적으로 탄소중립·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던 국가였다. 그만큼 국내 환경론자들 사이에서는 마치 이상향처럼 여겨져, 독일 에너지 정책은 탄소중립·에너지전환 정책 수립의 사실상 ‘모본(模本)’이었다.

이처럼 화석연료 없는 세상을 선도하던 독일이 천연가스 공급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탄소중립·에너지전환 정책 추진 중인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우선 탄소중립·에너지전환 정책의 내적 취약성 해결을 고민하게 만든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지닌 간헐성·변동성 문제는 자연스럽게 에너지 시스템의 내적 취약성으로 자리한다. 독일은 과감히 원전을 버리고 천연가스로 이를 해결하려다 현재 위기에 직면했다.

그럼 배터리 등 미성숙 기술을 제외한 대안은 원전일까. 자주 회자되듯 안전성·사회적 수용성도 큰 걸림돌이지만 원전 확대 정책 추진은 무엇보다 정권의 의지에 달렸다. 더욱이 원전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이념의 한쪽 끝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는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할 정권의 연속성도 그래서 함께 요구된다. 하지만 국내 정치지형상 차기 5년에는 어느 당이 집권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원전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권 교체 리스크를 극복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있다.

더불어 에너지 시스템의 복잡계적 특성을 고민하게 한다. 에너지 시스템은 경제·정치·사회·문화 등과 비선형적으로 얽힌 일종의 복잡계다. 최근에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기후까지 추가되어 더욱 복잡해졌다.

독일의 현 위기는 직접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원인이지만, 실제로는 작년 여름 유럽의 소위 ‘바람 가뭄(Wind droughts)’으로 인해 풍력 출력 저하, 이로 인한 유럽 내 천연가스 수요 폭증 사태에서 이미 배태되었다. 이 같은 복잡계적 특성으로 인해 이번 사태처럼 에너지 시스템에는 예견되지 않았던 다양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탄소중립·에너지전환 정책과 같이 에너지 시스템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하는 경우 그 결과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그린 2050년 아름다운 사회상 대신 아포칼립스 급의 재앙으로 나타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만큼 장기적인 선급하고 과감한 목표보다 실현 가능한 단기적 목표를 통해 시행착오를 거치며 신중히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요구된다.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는 "현자(賢者)는 역사를 통해, 우자(愚者)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했다. 이번 사태는 독일이 우리가 절대적으로 추종해야 할 에너지 이상사회일 수는 없음을 일깨웠다. 하지만 이들의 시행착오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역사가 될 수 있음도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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