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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5년에 바스러진 원자력 생태계...떠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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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5년에 바스러진 원자력 생태계...떠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

2022.07.30 06:00

※원자력발전은 효율성과 위험성을 모두 가진 기술이다. 동아사이언스는 원자력발전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는 지난 5년간 탈원전 정책에 따라 후퇴를 거듭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 전공자 수 감소와 인재 이탈, 원전 산업계 매출 감소 등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원전을 전공하는 대학생과 원전 산업에 종사하던 근로자 삶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이 기사는 기술이 아닌 사람에 초점을 맞췄다. 국가 정책이 급격하게 변하는 동안 그 생태계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다뤘다. 원자력 정책을 고민할 때 기술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3명이다. 지난 5년간의 이야기를 이들의 시선으로 담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의 의견은 동아사이언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편집자주)

 

 

원자력 공학을 전공하는 두 명의 학생이 있다. 한 사람은 원자력 공학 대학원의 석사과정을, 다른 한 사람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원자력 생태계를 나무에 비유한다면 이들은 몸통이다. 몸통에서부터 줄기로 갈라져 산업계와 학계의 나뭇잎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뷰 후 그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재완, 성민씨가 원자력공학을 고른 이유

 

조재완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남윤중 제공
조재완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남윤중 제공

조재완씨는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이다. 현재 한국원자력학회에서 청년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물리학과를 먼저 선택했던 재완씨는 현대 물리 법칙들로 어떻게 하면 더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우연히 원자력공학 수업을 들었다. 공학으로 인류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 당시는 2010년. 소위 언론에서 말하는 ‘원전 르네상스’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계통에 대해 연구하게 됐다.


양성민씨는 현재 경희대 대학원 석사과정생이다. 성민씨는 중학교 시절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이 수출된 모습을 보고 원자력공학과에 관심을 가졌다.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기술을 수출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당시 학교 선생님이 추천도 해줬다. 기계 쪽에도 관심이 많던 그는 결국 원자력공학과에 진학했다. 정치 외교에도 관심이 있던 그는 원자력 정책을 연구했다.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2017년 성민씨와 재완씨는 ‘탈원전 정책’이라는 벽과 마주 섰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로도 강하게 흔들리지 않던 원자력공학과는 탈원전 이후 변화를 겪었다. 경희대 원자력공학과는 전출자 수가 증가했다. 대학생들은 술자리에서 취업에 관한 고민으로 뭉쳤다.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도 전공 선택 학생 수가 급감했다.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은 떠나고, 인건비는↓

 

양성민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석사과정 학생. 경희대 제공
양성민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석사과정생. 경희대 제공

성민씨와 재완씨 모두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연구한다고 자부하며 공부했었다. 성민씨는 2015년 신입생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선배들이 좋은 직장에 가서 후배들한테 자주 밥을 사주러 오는 분위기였어요.”


성민씨의 룸메이트였던 K씨도 원자력공학과 입학 뒤 같은 진로를 꿈꿨다. 원전 업계에 취업해 일하는 것이다. 탈원전 정책이 시작되며 많은 것이 바뀌었다. 룸메이트는 학과를 떠났다. 설득을 거듭해도 떠나간 K씨의 마음을 붙잡진 못했다.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총학생회장이었던 성민씨에게 후배들은 상담을 요청했다. 설득을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설득에 성공한 후배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감까지 설득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전과는 학점이 높은 순으로 이뤄졌다. 원자력공학과 수업에 적응한 사람들 대부분이 다른 과로 가게 됐다. 다르게 보면 전과를 위한 학점 경쟁이 생겼다. 성민씨가 진로를 설계할 때 상담을 구했던 선배도 있었다. 그 선배는 신형 원자로를 개발하는 연구를 했지만, 진로를 변경해 인공지능 쪽에 취업했다.


성민씨는 “취업이 불안해 많은 학생들이 진로를 고민했다”고 했다. 전과를 하거나 전공과 다른 자격증을 따는 등 스펙을 쌓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기계과, 전자과 등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가는 학생이 늘었다. 약학대학 입학시험이나 변리사 시험, 로스쿨 입학시험, 공무원 시험 등을 보는 학생도 생겼다. 전과한 선후배, 동기가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됐다. 

2019 원자력·방사선 대학생 경진대회에 참가했을 때 질의 중인 양성민씨(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석사과정생)의 모습. 성민씨는 이 대회에서 팀원들과 함께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제공
2019 원자력·방사선 대학생 경진대회에 참가했을 때 질의 중인 양성민씨(경희대 원자력공학과 석사과정생)의 모습. 성민씨는 이 대회에서 팀원들과 함께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제공

탈원전은 탈원자력공학으로 다가왔다


KAIST에서 원자력을 전공한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탈원전 정책 추진 뒤 복수전공과 부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재완씨 주변에서는 원전 산업계와 관련 없는 세부전공을 택하는 학생도 늘었다. ‘탈원전’이라는 정책 선언이 ‘탈원자력공학’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재완씨는 KAIST에서 학과 설명회를 할 때(KAIST는 입학 후 과를 정하는 무학과 제도를 운영함)를 떠올렸다. 공식적인 자리였다. 자신 있게 1학년들에게 원자력공학과를 추천했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물어볼 때는 답변이 달라졌다. 재완씨는 “나는 이 분야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러나 선택의 책임은 네가 지는 거다”라고 말했다. 학과 설명회에 오는 후배들은 많았다. 그러나 실제로 학과에 들어오는 사람은 줄어들었다. 재완씨는 ‘도박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걸까’라고 생각했다.


재완씨를 비롯해 KAIST 연구생들은 인건비가 줄어들기도 했다. 기존에 하던 신형 노심 개발 등 관련 연구가 중단됐다. 신규 원전 개발과 관련된 과제가 중단된 것이다. 재완씨는 “과제 중단은 인건비랑 바로 직결됐어요. 그런 부분에서 타격이 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감정은 분노에 가까웠죠. 아무래도 통장에 들어오는 돈을 건드리는, 제 삶에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는 정책이니까요.” 과제가 중단된 연구실들은 인건비 충당을 위해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원자력공학 전공을 바꾸거나 하지 않았다. 재완씨는 “당장 정책은 이렇지만 이 지식으로 우리 사회에 기여할 부분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료 경희대
자료 경희대

서명 운동 나섰지만 시민 대부분 무관심


그래도 걱정이 됐다. 5~10년 뒤 학생들이 부족할 때를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응원이 계속됐다. “좀 힘내고 버텨라, 좋은 날 올 거다”는 식이었다. 이후 재완씨는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2018년 11월 대만은 국민투표를 통해 “2025년 전까지 원자력 발전 설비 가동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95조 1항을 폐지했다. 국민투표를 주도한 사람은 대학교수와 학생이었다. 


재완씨는 “‘국내에서도 학생들이 정책을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봤다”고 말했다. 대만은 2021년 12월 국민투표에서 ‘원전건설 재개’ 반대가 높아 탈원전 기조가 다시 강화됐다. KAIST는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카톡방에서 서명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경희대, 서울대, 한양대 등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네트워크를 만들기로 논의가 이뤄졌다.


대전역 등 길거리에 나가자 사람들은 대부분 무관심했다.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음료수나 빵을 주면서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재완씨는 “원자력 분야는 대부분 공공기관과 공기업 위주라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 당시 성민씨도 학생연대에 참여해 수원역에서 서명운동을 했다. 대부분 무관심하다고 느꼈다. 그중에는 “원자력은 그냥 위험한 거 아니에요?”라든지 “원자력 발전 하면 안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민씨는 “정치적 이념이 과학기술을 흔드는 모습에 회의감이 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에 2번 정도는 서명 운동이나 홍보자료 나눠주기 등 원자력에 관련된 인식 재고 활동을 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생태계가 좌지우지되는 학과는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대학생활을 온전히 즐기는 다른 과 학생들이 부러웠다.   

 

2021년 6월 KAIST 교내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조재완씨의 모습. 포스터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조재완 제공
2021년 6월 KAIST 교내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조재완씨의 모습. 포스터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조재완 제공

‘탈 탈원전’이 마냥 기쁘지는 않다


성민씨는 이번 정부 들어 정책이 다시 ‘탈 탈원전’으로 바뀌었다고 마냥 기쁘지는 않다. 안주하는 게 아니라 원자력 산업계도 사람들의 인식을 재고하는 여러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십 년을 바라보는 중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수립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여러 활동을 (과학자들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완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아무리 연구자분들이 ‘안전’을 연구해도, 정책적으로 안전하지 않다고 치부하면 안전하지 않다고 여겨졌어요. 여기에 싫증이 났죠. 원자력을 무조건 늘려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통해 산업 경쟁력과 (시민들의) 복지를 갖추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재완씨는 “서명운동을 하는 거 자체가 (원전을) 정치적으로 만든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고 했다. “원전은 이미 정치화됐어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다면 정치와는 별개로 원전 정책이 세워질 거라고 기대해요.”

‘다품종 소량 생산’이 특징인 원자력 생태계에는 중소기업 종사자가 많다. 지난 5년간의 이야기를 한 중소기업 직장인의 시선으로 담았다. 


심용규 팀장은 소프트웨어 회사인 ‘슈어소프트테크’에서 원자력발전소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검증해왔다.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다. 정보통신학과를 졸업한 뒤 2014년에 슈어소프트테크에 취직했다. 그때부터 원전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왔다. 원전 개발은 다른 분야보다 기초 지식이 많이 필요해 숙련된 개발자도 최소 2달간의 교육이 필요하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회사 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처우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탈원전 정책이 그의 삶에 다가왔다.

 

“거의 천재지변이었죠”


2017년 정권이 바뀌면서 시작된 탈원전 정책에 대해 심 팀장은 “거의 천재지변”이었다고 말했다. “원전을 중단시킨다는 결정은 너무 급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했어요.”

 

심용규 슈어소프트테크 사업개발1팀 팀장. 홍덕선 제공
심용규 슈어소프트테크 사업개발1팀 팀장. 홍덕선 제공

그는 신고리 공론화 기간을 거치면서 원자력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느꼈다. 미래에 원자력 사업 자체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고리 5·6호기의 공론화 과정 때는 건설이 지연되면서 대금 지급이 지연되기도 했다. “2010년부터 2017년도까지만 해도 회사 매출에서 자동차가 50%, 원전은 30% 비중을 차지했어요. 그런데 매출이 반토막 났어요. 2019년까지 해서 전체 매출의 15% 수준까지 떨어졌어요.”


2017년 당시 회사 내에서 원전을 담당하는 사람은 전체 300여명 중 40명 정도였다. “원전 담당 40명 모두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하우를 쌓아도 말이에요. 회사에서는 뭐로 (매출을) 메워야 하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국회에도 가고, 한수원 시위도 해봤던 거예요.”


주변 친구들은 걱정을 했다. “‘일 없잖아, 퇴사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비관적인 사람이 많았어요. ‘자율주행, 자동차 같은 소프트웨어 분야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국회 같은 데 가지 말고 그냥 우리 회사 와라’는 제의도 있었어요. 회사 내에서도 다른 분야를 스터디 해보라고 권장하기도 했어요.”

 

“풍력 왔어요” 희망고문에 떠나는 사람들  

 

2017년 7월 13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 때 한국수력원자력 앞에서 시위 중인 중소기업 직원들의 모습. 심용규 슈어소프트테크 사업개발1팀 팀장도 회사 대표로 집회에 참석했다. 심용규 제공
2017년 7월 13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기간 때 한국수력원자력 앞에서 시위 중인 중소기업 직원들의 모습. 심용규 슈어소프트테크 사업개발1팀 팀장도 회사 대표로 집회에 참석했다. 심용규 제공

사업은 기존보다 느린 속도로 진행됐다. 길지만 가늘게, 원전 관련 인력이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이었다. 회사에서는 그래도 신한울 3·4호기까지는 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땅을 팠는데 이걸 묻지는 않을 거야”라는 이야기였다. 심 팀장은 “희망고문”이라 표현했다. 2020년쯤이었다. 3~4년 후 신고리 5·6호기가 끝나면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주변 사람들은 점점 떠나갔다. 시작은 발주처(일을 주문한 기관)의 담당자들이었다. A 회사 관계자에 전화를 걸었다. 원자력 부서 담당 조직에 일하던 사람이었다. “저 이제 풍력 왔어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파트너로 일하던 담당자들이 탈원전 이후 다 다른 데로 갔어요. 일이 더뎌질 수밖에요.” 발주처 담당자들이 바뀌니 신기한 일도 생겼다. 하도급 업체인 슈어소프트테크가 직접 담당자들에게 일을 인계해줬다. 해당 기관(발주처)에 인계해줄 사람이 이미 떠났기 때문이다. “저희가 계약을 받은 하도급 업체인데, 발주처한테 ‘이거 여기까지 진행된 거고요, 계통은 이런 거고요’하면서 설명을 해줬어요.”


회사 내 사람들도 떠나갔다. 그는 후배들을 잡을 수 없었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사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다려보자, 그래서 참아보자고 하기에는 정책의 방향에 따라 산업이 움직이는 사업이었죠. 그래서 확신하며 ‘참자’고 말은 못 했어요.” 40명이던 원전 담당 직원은 30명 정도로 줄었다. 시니어 직원은 이탈하지 않았지만 주니어 직원은 이직과 전직이 잇따랐다. 신규채용은 없었다.


그는 팀장으로서 팀원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직하는 동료 직원에게 그는 에둘러 연봉이나 복지 수준을 물을 뿐이었다. “‘그래서 거기 얼마나 준대, 앞자리 바뀌었니, 복리후생이나 업무 체계는 어떠냐’ 물었어요. 또 ‘앞으로 원전이 재개되면 한번 그때 다시 연락할게’ 하며 여지를 남겼죠.” 그렇게 원전 MMIS 전문가들은 하나둘 다른 분야로 떠나갔다.


시장 논리 혹은 기술적 한계에 의해 산업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이 아니었다. 원전 생태계 속 사람들은 에너지 정책 변화로 이직, 전직 등을 결정했다. “저희는 소프트웨어 기업이니 인력을 유지하는 비용만 들어요. 하지만 자재나 금속, 건설 쪽 원전 중소기업들은 쇠나 철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방청제를 뿌려야 해요.” 심 팀장은 다른 업계 사람들을 걱정했다. 원자력산업은 부품이 많이 필요한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이기 때문이다. 2017년 당시 소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의 약 90%가 중소기업이었다.


해외 원전 수출과 SMR…희망을 되찾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스마트 원전계측제어시스템(SMART MMIS)의 모습. 심용규 팀장은 슈어소프트테크에서 원전 MMIS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검증을 해왔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공식 홈페이지 제공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스마트 원전계측제어시스템(SMART MMIS)의 모습. 심용규 팀장은 슈어소프트테크에서 원전 MMIS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검증을 해왔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공식 홈페이지 캡쳐

정권이 바뀌고 탈원전 정책은 반전을 만났다. 새 정부의 탄소중립 에너지 기술 로드맵에 소형모듈원자로(SMR)가 포함됐다. 탄소중립 정책 자체는 똑같지만 정부는 여기에 탄소중립 에너지믹스 구성을 위해 원전을 포함했다. 에너지믹스는 전력을 화력, 태양광, 원자력 등의 방법으로 생산하는 비율을 뜻한다. 심 팀장은 정책 변화에 달라진 점을 당장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원전 사업을 하는 회사로서 경영진의 마음이 바뀐 것 같다고 느꼈다.


현재는 원전 관련 졸업생이나 경력직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그는 “원전 관련 소프트웨어는 기초 지식이 많이 필요하고 검증 절차도 더 복잡해요. 자동차가 80이라면 원전은 100인 수준”이라며 “원전 관련 소프트웨어 검증자는 적합한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되찾았다. 해외 원전 수출과 SMR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녹색산업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원전이 조건부로 포함됐다. 원전계측제어시스템 업무는 SMR 호기 별로 각각 필요해서 제어 안전성 영역에서 할 역할이 많다고 기대하고 있다. 


“제어하는 부분에 대한 안전성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희로서 SMR은 규모는 작아졌지만 사업 기회는 더 많아진 거죠.” 심 팀장은 팀원들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원전 소프트웨어 분야의 사업을 준비 중이다. 계속 원전 분야를 하면서 기술적 노하우가 쌓였다며 자신감도 보였다. 

 

▼이어지는 기사를 보려면?

과학동아 7월호, Intro. 탈원전 5년에 바스러진 원자력 생태계

Part1. 떠난 자리에 남은 사람들

Part2. 시대에 휘둘린 ‘정치적 에너지’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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