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대못에… 尹정부, 노후 원전 6기 재가동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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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4.07. 오전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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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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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수명 끝나지만… 文정부, 수명연장 안해
윤석열 새 정부가 탈원전 백지화를 내세웠지만, 임기 5년간 증가할 원전 설비 용량은 역대 정부 중 가장 적을 전망이다.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와 설계 수명 만료 원전의 계속 운전 방침에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대못’ 탓에 필요한 절차가 아예 진행되지 않거나 크게 늦어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에서 가동에 들어가는 신규 원전은 4기다. 설계 수명이 끝나는 6기는 계속 운전을 위해 필요한 각종 절차 진행에 약 5년이 걸려 새 정부 내내 가동을 중단해야 할 판이다. 결국 새 정부에서 원전 설비 용량 증가는 신형 원전 1기(1400㎿)의 3분의 1 수준인 450㎿(메가와트)에 그친다. 탈원전을 밀어붙인 문재인 정부 때 증가한 원전 설비 용량은커녕,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만 가동했던 박정희 대통령 때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기차 보급, 냉난방 기기 확대 등 산업·생활 구조 변화로 전력 수요는 계속 늘어나지만, 원전 설비는 제자리걸음 하면서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겨울철 전력난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유례없이 낮았던 국제 유가와 앞선 정부가 건설해 둔 발전소 덕에 전력 수급에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갔다”며 “차기 정부가 고유가 격랑 속에서 원전 확대까지 어려워지면 심각한 에너지난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탈원전 대못에 노후 원전 가동 중단

6일 본지가 한국수력원자력의 ‘가동 원전 및 계획 원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윤 당선인 임기 내인 2027년 5월까지 설계 수명이 끝나는 원전은 6기다. 내년 4월 650㎿(메가와트)급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고리 3·4호기(각 950㎿), 전남 영광의 한빛 1·2호기(각 950㎿), 경북 경주의 월성 2호기(700㎿) 등이다. 총 설비 용량은 5150㎿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설계 수명이 되면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하지만 새 정부는 외국처럼 원전을 정비해서 수십 년 더 쓰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자동차 수리하듯 하루 이틀 만에 뚝딱 원전 수명을 늘릴 수 없다는 점이다. 한수원과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원전을 계속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는 데 대략 4~5년이 걸린다. 운영사인 한수원이 설비 안전성을 평가해 보고서를 제출하는 데 10~24개월,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사에 18개월 걸린다. 이와 동시에 방사선 환경영향평가를 토대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운영 변경 허가를 신청하면 심사에만 24개월 정도가 필요하다. 노후 설비 교체에도 수개월이 걸린다.

내년 4월 설계 수명이 끝나는 고리 원전 2호기(오른쪽에서 둘째). 윤석열 새 정부에서는 고리 2~4호기를 비롯해 원전 6기의 설계 수명이 끝나지만, 각종 인허가 절차가 늦어지면서 임기 5년 내에 재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실제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절차는 5년 넘게 걸렸다. 2012년 11월 수명이 끝나는 월성 1호기는 3년 전인 2009년 12월 안전성 평가 보고서와 운영 변경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원안위 최종 허가는 2015년 2월에 나왔고, 재가동은 그해 6월 시작했다.

탈원전을 추진한 문 정부는 고리 2호기 수명 연장 절차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고, 한수원은 지난 4일에야 안전성 평가 보고서를 제출했다. 결국 고리 2호기는 내년 4월 가동을 멈춰야 하고, 새 정부 임기 내 재가동 여부는 불투명하다. 새 정부 임기 때 설계 수명이 끝나는 다른 원전 5기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인허가 절차를 대폭 단축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지역 주민 반발과 안전성 논란을 불러올 수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원전 멈추면 전기 요금 더 올라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도 지난해 국내 전력 생산의 27%를 차지하며 기저 전원 역할을 한 원전 설비 용량이 새 정부 5년 동안 같은 수준에 머물 경우 국내 전력 수급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가동 중단되는 노후 원전 대신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 등 값비싼 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소 가동률이 높아지면 전기 요금 인상을 압박하게 된다. 서울대 원자력미래기술정책연구소에 따르면, 고리 2호기가 가동 중단돼 LNG 발전소로 대체하면 한 해 발전 비용이 76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원전 수명을 연장하려면 지역 주민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2015년 법 개정에 따라 주민 의견 수렴 절차가 추가되면서 재가동에 과거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이종호 전 한수원 기술본부장은 “프랑스나 캐나다와 같이 사업자가 설비 교체를 약속하면 규제 기관에서 계속 운전 허가를 내주는 국가가 많다”며 “전력 수급 상황이 심각한 만큼 규정을 바꿔 재가동을 위한 절차를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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