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원전 흑역사’를 기억해야 원전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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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1. 오전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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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 기구의 수장이 최근 온라인 내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느닷없이 울먹였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태양광 속도전에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이다. 지난 5년 줄기차게 밀어붙인 ‘원전 퇴출’ 정책이 곧 ‘탈원전 퇴출’로 180도 달라질 판이니 그로선 억하심정이 들었을 법하다. 그러나 탈원전의 오욕적 진상은 그 어떤 눈물로도 씻기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2월 29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의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탈원전은 ‘막장 드라마’의 요소가 여럿 있다. 국내에선 위험하다고 선전하면서 해외에 나가선 한국 원전이 안전하다고 자랑했다. 그걸 볼 때마다 국격이 떨어진 것 같아 부끄럽고 당혹스러웠을 국민이 한둘 아닐 것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더 막장 드라마 같다. 대통령이 ‘영구 가동 중단’ 운을 떼자 장관은 부하 직원을 “너 죽을래”라며 다그치고, 공무원은 사무실에 야밤 잠입해 자료를 삭제했다. 경제성 평가 조작, 조기 폐쇄에 따른 한수원의 손실 5600억원을 사실상 세금으로 메꿔주기로 한 것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장면이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보인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탈(脫)탈원전’을 여러 번 선언했다.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초법적, 비이성적 정책을 생생히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라고 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탈원전 백지화, 원전 최강국 건설’이라 쓰기도 했으니 새 정부 출범 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 에너지 정책의 정상화 조치가 뒤따를 것이다.

원전은 여러 전력원 가운데 사고에 따른 사망 위험, 온실가스 배출, 비용이 가장 적게 든다. 신뢰성 높은 여러 국제기구가 원전의 안전성, 친환경성, 경제성을 이미 검증하고 발표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국민에게 이런 이유를 제시하며 ‘친원전 드라이브’를 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작은 걸림돌이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원전 정책이다.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 가동 중단이나 사고에도 국민들은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친원전 정책의 첫 시험대는 노후 원전의 연장 가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8월 고리 2호기를 시작으로 2029년까지 설계 수명 30~40년이 끝나는 원전이 10기에 달한다. 원전 가동 연장은 미국과 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추진 중인 정책이다. 그러나 가동 연장을 위한 준비가 미흡하거나 국민 공감대가 떨어질 경우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실제로 윤 당선인만큼이나 원전에 우호적인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원전 흑역사’가 있었다. 2012년 2월 고리 원전 1호기의 부품 고장으로 단전 사고가 12분 발생했다. 30년 수명이 다해 2007년 10년 연장 가동 조치가 내려진 뒤 5년 뒤 발생한 이 사고로 원전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2013년 6월에는 당시 23기 원전 가운데 10기가 멈춰서기도 했다. 그때는 한수원이 원전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사실까지 드러나 파장이 더 컸다.

현 정부가 조기 폐쇄한 월성 1호기도 뼈아픈 역사가 있다. 원전 연장 가동을 하려면 먼저 한수원이 ‘계속 운전 신청서’를 낸 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한수원은 신청서를 제출하기 앞서 7000억원을 들여 대규모 설비 교체 작업을 벌였다. ‘허가하지 않으면 7000억원이 날아갈 것’이라는 식이었다.

윤 당선인은 “2030년 이전 최초 운영 허가가 만료되는 원전은 엄격하고 과학적인 안전 평가를 바탕으로 운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 불량 부품이든 시험성적서 조작이든 원전 마피아들이 배짱을 퉁기는 것이든 국민 안전을 생각하면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들이 새 정부만큼이나 원전을 옹호하는 과거 보수 정부에서 모두 벌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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