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5년’ 불만 드러낸 전문가들…尹 정부에 “하던 대로 하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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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3.24. 오후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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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민의힘 김영식 국회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진흥정책 추진’ 세미나에 참가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는 모습.(사진=정두용 기자)

“하던 대로 하게 해 주세요.”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학계·산업계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5년간 추진된 탈(脫)원전 정책으로 쌓인 과제들을 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그간 강조했던 ‘과학적 사고 중시, 증거 기반 정책’에 대해서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윤 당선인이 ‘탈원전 폐기’를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건 만큼 원전 산업의 정상화가 차기 정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24일 국민의힘 김영식 국회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진흥정책 추진’ 세미나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그간 이뤄졌던 탈원전 기조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탈원전 정책이 만든 현재 산업 생태계 모습을 진단하고 “위축된 원전 산업의 진흥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위해 △원전 건설재개 △원전 계속운전 △기저전원으로 원전 활용 △원전 수출 활성화 △한미 원자력 동맹 강화 △원자력 관련 정부 조직 개편 △정책 지원 확대 △사용 후 핵원료 처리 제도 마련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해결이 필요하다고 짚은 분야들은 대부분 탈원전 정책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멈췄던 영역들이다. 이날 세미나엔 원전 산업과 관련된 정부 관료들도 참석했는데, 학계·산업계의 이런 주장에 탈원전으로 인한 부작용을 일부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 두고 원자력학계 인사는 세미나 직후 기자와 만나 “정권 교체로 정책 기조가 확실히 바뀌었다는 방증”이라며 “이렇게 쉽게 뒤집히는 문제였는데, 왜 그간 객관적 증거와 데이터를 보여줘도 변화가 없었는지 억울한 감정까지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파이로프로세싱 실험 시설 프라이드(PRIDE) 모습.(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세미나 발제를 통해 “윤 당선인의 슬로건은 공정과 상식, 그리고 정상화인데 이에 맞는 원자력 공약이 나왔다”며 “(공약에 반영된) 원자력계의 요구사항은 ‘하던 대로 하게 해달라’ 수준이었지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구체적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및 계속운전 △원전 수출을 통한 일자리 창출 △탄소중립·원자력 기저발전 △대형 및 소형원전 경쟁력 제고 등은 그간 원자력업계에서 지속해서 추진했던 사업들이라고 봤다. 또 △한미 원자력 동맹 강화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수출·규제선진화 등은 “할 수 있었으나 안 했던 영역이라 ‘정상화’ 범주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탄소중립 정책도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배출 0)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원전의 역할이 부제한 점을 이유로 들었다. 정 교수는 “태양광·에너지저장시스템(ESS)·수소경제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실질적 기술 로드맵 없이 탄소중립 달성을 제시했다”며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높여 잡았는데 재생에너지 확대분을 원전으로 대체해야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탄소중립은 비용추산도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적게는 1000조원에서 많게는 1경원까지 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안위 독립성·전문성 강화해야”…달라진 관료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독립성·전문성 훼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 교수는 2년 전 원안위가 ‘라돈 침대’ 사건을 조사하며 수거 명령을 내렸으나 검찰은 이를 불기소로 마무리했다는 점을 짚으며 “원안위가 국민을 안심케 하는 것이 아니고 불안에 떨게 하는 게 맞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안위가 현재 탈원전 행동가들에 지배돼 원자력업계와의 괴리가 상당하고, 다시 신뢰를 쌓기 위해선 전문성과 독립성이 갖춰져야 한다고 봤다. 정 교수 외에도 윤종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교수 등 다수의 전문가가 원안위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정아 원안위 안전정책국장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독립성·전문성과 같은 부분에서 아쉬운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해결할 방안으론 대통령 소속으로 변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무총리 소속이라 독립성 논란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며 “이를 대통령 소속으로 변경해야 독립성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수 있어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관료들의 원전 정책에 대한 온도 변화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서도 관측됐다. 김유성 산업부 원자력산업정책과장은 “문재인 정부의 원전 가동률이 낮았지만 점차 높여가는 중”이라면서 “고준위 처리 부분은 기술적 문제 고려해서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했다. 최미정 과기정통부 원자력연구개발과장 역시 “SMR 등 차세대 원자로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민 수용성을 고려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원자력 연구 재원이 원자력발전량에 연동되도록 법제화돼있어 재정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 부분은 국회에서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이외에도 다양한 원자력업계의 현황들이 다뤄졌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논의가 다소 지연됐다고 평가받는 ‘사용 후 핵연료 처분’이 대표적이다.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은 “이미 한·미 공동연구로 핵심기술이 개발된 파이로프로세싱(이론적으로 폐연료봉의 93% 수준을 차지하는 우라늄을 회수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정책화·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며 “사용 후 핵연료 안전관리 특별법 제정을 통해 국내 실증과 장기 로드맵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산업·일자리 담당)에 전문위원으로 몸을 담고 있는 정용훈 카이스트 공과대학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도 참석했다. 그는 인수위와는 별개의 사견임을 거듭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에서 부서의 정책기능이 퇴화되고 약화됐다. SMR 개발을 도전적이고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미나에서 나온 원자력계 의견들을 종합해 인수위에도 전달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용훈 카이스트 공과대학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가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진흥정책 추진’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사진=정두용 기자)

전문가 모두 원자력 산업 진흥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나타났지만, 급격한 정책 선회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득기 한국수력원자력 원전사후관리처장은 “원전 해체에 집중하고 있는 현행 정책을 또 바꾼다면 지금 믿고 따라온 산업체들 또한 배제된다”며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기조로 인한 긍정적인 면을 짚은 발언도 나왔다. 정 교수는 “원자력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확대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의 문제점도 널리 알려지게 됐다”며 “탈원전을 추진하려는 정부가 또다시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김 의원은 “탈원전 해소를 위해서는 하루 이틀로는 부족하고 윤석열 정부에서 원자력 관련 기관들의 권위가 높아져 부흥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국민의힘 김영식 국회의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된 ‘윤석열 정부의 원자력 진흥정책 추진’ 세미나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정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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