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수요 급증세…한미 원자력동맹으로 세계 시장 개척 나서야” [청론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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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3.23. 오후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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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신재생 한계·우크라사태로 에너지안보 차원 원전 중요
러·중은 신뢰 하락, 韓은 정권교체로 유리한 수출 환경
‘에너지믹스전략’ 범정부 지원하면 일자리 10만개 창출
원전생태계 복원 시급, 수소병합원전 등 기술개발 필요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가 2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면 1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며 “범정부적인 체계를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진 제공=주한규 교수

[서울경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초토화한 원자력 산업이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으로 회생의 계기를 맞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한계가 드러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안보가 중요해지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우리 원전 산업이 권토중래할 기회가 다가온 셈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장 겸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23일 “우리나라가 탈원전에서 벗어나고 한미 관계도 개선되면서 굉장히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한미 원자력 동맹을 긴밀하게 만들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 당선인의 에너지 정책 공약 개발에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 강행으로 많은 피해를 초래했는데 제일 큰 문제는 무엇이었나.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기존 원전은 조기에 폐기했다. 그러다 보니 원자력에 투자했던 많은 기업들이 큰 손실을 내고 도산하는 등 수조 원의 피해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전 가동을 줄이고 비싼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리다 보니 지난 5년 동안 한국전력의 적자는 8조 원가량에 이르렀고 부채는 34조 원 늘었다. 가스·석탄 발전이 늘어나 탄소 배출량이 감축 목표 대비 7300만 톤이나 증가했다. 원자력 산업의 생태계가 붕괴되는가 하면 한전이 부실해지고 환경 문제는 더 악화했다. 원전 수출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원전 수출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나.

△원전 발주 국가들은 한국형 원전 건설을 원하면서도 우리의 탈원전 정책을 들어 회의적으로 물어봤다. 수주 협상 과정에서 첫 번째 질문은 한국이 탈원전을 하는데 지어주는 원전의 유지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였다. 자기 나라에서 위험해 쓰지 않는다면서 남의 나라에는 사가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원전을 이용해 저렴한 전기를 공급해온 게 우리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하는데.

△지난 43년 동안 원자력으로 공급한 전기량이 전체의 3분의 1이다. 전기 가격이 100원이면 원전 발전 단가는 50원, LNG 발전 단가는 120원이었다. 원전 전기가 워낙 싸 한전이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다. 사후 처리 비용을 감안해도 엄청나게 쌌다. 사후 처리 비용은 폐로·사용후핵연료 처리 등에 대비해 발전 원가의 15%로 반영돼 적립되고 있다.

-기후변화, 탄소 중립 시대에 바람직한 에너지 정책 방향은.

△화석에너지는 줄이고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원자력·신재생에너지를 늘리되 우리 실정에 맞도록 잘 조화시키는 ‘한국형 청정에너지 믹스’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탄소 중립을 위해 당초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중점적으로 확대하려다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장벽에 부딪혀 원자력발전도 함께 늘리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성·변동성 때문에 ESS를 써야 하는데 리튬·알루미늄·니켈 등의 금속이 다량 들어가 엄청 비싸다는 게 문제였다.

-탄소 중립 계획 전반의 재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배출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줄이기로 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신재생 30%, 석탄·LNG 41%, 원자력 24%의 발전 비중 기준을 재조정해야 한다. 1차 운영 허가 기간이 종료되면 닫기로 했던 10개 원전 대부분을 계속 운전하고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를 다시 짓고 원전 가동률을 높이면 원자력 비중을 35%까지 늘릴 수 있다.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줄여 확대에 따른 부작용과 전기료 인상 부담을 덜어야 한다.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에너지 믹스 전략에서도 원자력 비중을 적정 수준으로 늘리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줄여 실현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녹색분류체계(그린택소노미)도 EU의 선례에 따라 원자력을 친환경에너지에 포함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서 원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벨기에는 탈원전 정책으로 2025년까지 원전 7기를 모두 폐기하기로 했다가 2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바꿨다. 핀란드도 새 원전을 건설해 시운전하고 있고 스웨덴은 ‘원인원아웃’에 따라 폐기하는 만큼 새로 짓기로 했다. 코로나19가 거의 마무리되면서 세계 경기가 회복되고 유럽에 바람이 덜 불어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위기가 발생한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안보·독립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원전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원전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중국·프랑스·미국·한국 등 5개국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용이 떨어졌고 중국도 서방 국가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한국·프랑스·미국이 주력 수출국이고 중국이 조금 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의 원전 건설 단가는 미국의 3분의 1, 프랑스의 2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싸다. 미국은 독자 설계 기술을 가졌지만 주요 원전 기기를 자급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기술 자립을 달성했지만 핵무기 통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다. 한미 원자력 동맹을 긴밀히 해 세계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체코는 한국수력원자력, 사우디아라비아는 한전이 주도한다는 등 나눠 먹기식으로 이원화한 수출 지원 체계도 일원화하고 자금 조달과 국방 문제 등 범정부적 지원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2030년까지 10기를 수출하면 1년 이상 지속되는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이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서두르겠다고 했지만 내년에나 착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장 큰 장애가 환경영향평가다. 환경영향평가는 한번에 5년간 유효한데 유효 기간이 지난해 8월로 지났다. 다시 받으려면 공청회를 포함해 1년 반이 걸릴 수 있다. 신한울 3·4호기 바로 옆에 1·2호기가 있다. 이곳에서 최근 측정한 사후 환경영향평가의 입력 자료를 적법한 범위에서 준용해 우회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도 미리 바꿔야 하지만 현 정부가 계획 변경 없이 원전을 정지시키면서 ‘구속력 없는 행정 계획’이라고 한 만큼 한국수력원자력의 결정으로 할 수 있다. 가급적 빨리 건설을 재개해야 무너진 원전 산업을 조금이라도 더 회생시킬 수 있다.

-윤 당선인이 전기 요금 동결을 공약했지만 이를 실행하면 국민에게 더 큰 부담으로 전가될 것으로 우려되는데.

△4월 전기 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은 대선을 앞두고 1월에 올려야 할 결정을 꼼수로 미룬 것을 비판하기 위해 내세운 것이다. 공약을 지키면 올해 한전의 빚이 40조 원을 넘어서면서 회사채 발행 금리가 올라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적 결정으로 전기 요금을 인상·인하하지 못하도록 독립적인 전기요금위원회를 설치해 해결해야 한다.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위원들의 임기를 보장해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요금을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수의 해외 국가가 원전 수명을 늘려 사용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수명 연장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다. 자동차도 수명이 따로 있지 않고 2년마다 안전 검사를 통과하면 계속 쓸 수 있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보통 처음에는 40년 운영을 허가받고 끝나면 갱신 허가를 받아 20년씩 더 사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93기의 원전 중 88기가 60년간 계속 운전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이 가운데 6기는 20년 운전 허가를 더 받아 80년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가 첫 운영 허가를 30년씩 받았다. 이후 고리 1호기는 10년만 연장돼 2017년 폐로됐고 월성 1호기도 10년 연장돼 내년까지 쓸 수 있었지만 현 정부가 조기에 폐기했다. 첫 운영 허가가 2030년까지 종료되는 원전이 10기에 이른다. 설비 보강을 위해 돈이 많이 드는 구형 원전은 빼더라도 경제성·안전성이 충족되는 원전은 계속 운전을 추진해야 한다.

-윤 당선인의 10대 공약에 ‘원전 최강국 건설’이 포함돼 있다.

△우선 탈원전으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신속히 복원해야 한다.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탄소 중립에 긴요해지는 수소와 전기를 함께 생산할 수 있는 수소병합원전을 개발해야 한다. 탈원전으로 흐지부지된 사우디 소형모듈원전(SMR) 건설도 서둘러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SMR은 전기 출력이 대형 원전의 10분의 1가량인 소형 원전으로 안전성이 대폭 향상된다. 우리는 이미 지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헬륨 가스를 쓰는 SMR은 고온의 열을 공급할 수 있어 전기를 덜 사용하게 돼 수소 생산 효율이 매우 높으므로 수소 생산 전용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수소경제 이행 기본 계획에 원전 활용 방안도 포함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핀란드가 세계 처음으로 500m 지하에 처분장을 짓고 있다. 스웨덴도 이미 처분장 허가를 받아 곧 착공할 예정이다. 그전까지는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 시설을 만들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해야 했다. 미국도 원전 시설 내에 임시 저장 시설을 구축해 안전하게 운영해왔다. 현 정부는 탈원전을 노려 임시 저장 시설 건설을 등한히 했다. 새 정부는 안전성을 널리 알리면서 운영 기한 약속과 적절한 보상으로 임시 저장 시설 건설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인사가 적다는 지적이 있는데.

△인수위원은 없지만 산하 전문위원으로 정용훈 KAIST 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가 있고 실무위원으로 김지희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이 참여해 큰 문제가 없다.

He is…

1962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일하다 미국 퍼듀대 원자핵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자력연구원으로 복귀한 뒤 2004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센터장도 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강행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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