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탈원전 앞장선 탄중위, 인수위에 ‘원전 확대案’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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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3.23. 오전 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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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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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맞춰 새판짜기 착수
“원전 늘리면 기업 부담 줄어”
文정부 탄소중립 문제점 짚어
25일 탄소중립기본법 발효되면
자동 해촉되는 민간 위원들
“2년 임기 채우겠다” 버티기

대통령 소속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원전을 사실상 배제한 문재인 정부 탄소 중립 시나리오의 문제점, 원전 확대 방안 등이 포함된 보고서 초안을 작성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측에 제출할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정권 교체를 앞두고 탄중위 내부에서 ‘새판 짜기’가 시작된 것이다.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뉴시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탄중위는 ‘2030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해 원자력이 발전원에 포함될 경우 등을 상정한 인수위 제출 보고서 초안을 작성 중이다. 이 초안에는 “(문 정부에서 만든) NDC 시나리오에 ‘원전’이라는 변수가 추가될 경우, 탄소 중립 정책 초반(2022~2025년) 기업들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원전을 확대하는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원전 없이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가량 줄이겠다던 종전 NDC에선 당장 올해부터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파르게 줄여야 해 산업계 부담이 컸다. 그런데 원전 비율이 높아지면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 등에 걸리는 기업의 시간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말 발표된 국내 탄소 중립 중·장기 시나리오는 ‘2030 NDC’,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겠다는 ‘2050 탄소 중립’ 두 가지다. 특히 코앞으로 다가온 NDC의 경우 새 정부에선 “한번 약속한 NDC 목표는 후퇴할 수 없다”는 파리협정에 따라 감축량 목표는 그대로 두되,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룬 ‘에너지 믹스(mix·전원 구성)’가 논의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석탄 25%, LNG 37%, 재생에너지 20%, 원전 18%로 에너지 비율을 재편한다는 계획이었다. 새 정부에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는 20%대로 가져가되, 임기 내 화석연료 비율은 40%대까지 줄이겠다고 했다. 화석연료 공백을 포함해 전체 에너지에서 원전 비율이 점차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탄소 중립 시나리오 재편은 불가피하다. 당장 지난 21일 활동을 시작한 인수위에 탈원전 정책 폐기를 염두에 둔 전문위원 인선이 이루어졌다. 산업부에선 원전 수출을 성사시켰던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주영준 산업정책실장이 인수위에 파견됐다. 탈원전 정책에 쓴소리를 해왔던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등도 인수위에 합류해 윤석열 당선인의 신한울 3·4호기 건설 공약을 살필 예정이다. 현 정부 입맛에 맞는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던 탄중위 입장에서도 이제 새 전략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탄소 중립 정책 변화를 준비 중인 탄중위와 달리, 현 정부가 위촉한 민간위원들은 “출범 당시 약속했던 2년 임기를 보장하라”며 탄중위를 압박하고 있다. 오는 25일 ‘탄소중립기본법’이 발효되면 탄중위는 대통령 직속 기구에서 법에 근거한 기구로 ‘신분’이 달라진다. 현 민간위원들은 대통령령에 따라 위촉됐기 때문에 윤순진 위원장을 포함한 민간위원 전원은 자동 해촉된다. 법에 따라 자리에서 당연히 물러나야 하는데도 일부 민간위원이 “임기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탄중위 측은 “현재 탄중위 민간위원들은 탄소중립기본법 시행과 함께 해촉되는 게 옳다”며 “탄소중립기본법 시행 후 법이 보장하는 민간위원의 ‘2년 임기’는 새롭게 꾸려질 ‘2기 탄중위’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작년 5월 관계 부처 18곳 장관 및 민간위원 75명 등으로 구성한 ‘탄중위 1기’에는 원전 등 에너지 전문가는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로 정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만 초점을 맞춘 국내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작년 말 확정·공표했다. 그런데 탈원전 폐기를 공약으로 들고나온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새로 출범할 ‘2기 탄중위’에는 재생에너지와 원전, 전력망 전문가 등 등 탄소 중립 실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 전문가가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다만 새 탄중위가 공식 출범하기 전까지 종전 민간위원들을 강제로 해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기 탄중위’ 구성이 지연될 경우 탈원전을 지지했던 민간위원들에게 탄소 중립 정책이 계속 끌려다닐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익명을 요청한 탄중위 관계자는 “‘2기 탄중위’를 빨리 뽑는 것이 향후 각종 탄중위 업무 추진에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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