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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급한 원전산업 살리기

지난 5년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산업은 큰 충격을 받았다. 원자력발전소를 설계하여 안전성에 대해 규제기관으로부터 허가를 받고, 원전을 건설하고 시운전을 거쳐 장기적으로 운영하는 일련의 순환과정에 제동이 걸렸다. 산업의 흐름도 마치 피의 흐름과 같아서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문제가 발생한다.

신규 원전건설이 백지화되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주기기를 공급하는 두산중공업과 800여 협력사의 돈줄이 막혔다. 보조기기를 공급하는 700여 중소기업도 돈줄이 막혔다. 원전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기관은 여전히 기능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래부터 산업기반이 붕괴하는 것이다. 이들 상당수는 원전사업을 포기하거나 라이센스를 반납했다. 직원들도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대형건설사는 원전 대신 아파트를 짓고 있다.

단 한 기의 원전도 추가로 수출하지 못하였다. 2009년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에 APR1400 원전을 수출하면서 우리나라 원전의 가격이 미국이나 프랑스 원전의 절반 이하임이 밝혀졌다. 게다가 우리는 적기준공이라는 신화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서는 자국 정부의 지원을 힘입은 러시아와 중국만 약진하였다. 다 되었다고 생각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원전 수출도 안되고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했던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다. 원전 비중이 줄어들면 한전이 적자를 입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천연가스 수입은 사상최고가 되었다. 태양광과 풍력자원이 나쁜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의 한계도 드러났다. 재생에너지 연구개발이나 산업육성이 아니라 보급위주로 추진하는 바람에 보조금은 모두 중국으로 흘러갔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데에도 재생에너지로 부족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기와 수소를 청정하게 공급하는 방법도 원자력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새 정부가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원자력의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신한울3‧4호기 건설재개를 통해 원전 생태계에 긴급한 수혈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40년간 쌓아온 기술력을 나라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이후의 에너지 위기를 경험하면서, 누구 말대로 ‘원전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두기 위해서는 원전산업과 그 생태계가 소멸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원전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단 기업이 살아야 한다.

둘째,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1년 신설된 조직으로 규모는 커졌지만 경륜을 확보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전문가의 채용보다는 타 부처의 공무원이 유입되면서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없이 직급만 올라갔다. 원자력안전위원과 산하 원자력안전재단의 주요 보직이 탈원전 운동원 인사들로 채워지면서 편향성이 확대되었다. 당초 원안위를 만들 때, 사업자로부터의 독립성은 염두하였으나 탈원전 운동가들로부터의 독립성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원전사업자는 원안위의 탈법적 요구를 수용해야만 했다.

셋째, 원전수출을 위한 범부처 추진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원전수출은 2010년을 기점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원전 그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그 후의 시장은 국가경쟁의 시장이었다. 금융, 국방, 문화, 외교 등 국가가 가진 총력을 기울여서 경쟁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조 원이 들어오는 시장이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게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기도 하다.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력은 결국 유럽연합(EU)으로 하여금 에너지에 대한 녹색분류체게(Taxonomy)에 원자력을 넣도록 만들었다. 이산화탄소를 줄여야만 한다면 사회적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줄여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의 도입과 확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원전의 수출은 국부를 창출하고 청년들에게 고급일자리를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차원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저감에 기여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넷째, 고준위폐기물 처분부지를 확보해야 한다. 처분부지 확보를 위한 노력은 1980년대 안면도 사업에서부터 지금까지 아홉 차례 있었다. 부지확보를 위해서는 확정이전에 부지에 대한 조사를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아홉 차례 모두 부지에 시험용 구멍 한번 뚫어보지도 못하고 접어야 했다. 탈원전 운동가들의 선동으로 인하여 순진한 주민들의 소요가 발생하였고 정부는 추진동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국토는 좁고, 인구는 많으며, 수출해야 먹고살고, 에너지 소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력을 살려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무너진 원자력인의 사기를 올려야 한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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