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5년…"멀쩡하던 원전부품사, 1인 기업 된 지 8개월째"

머니투데이 최민경 기자 2022.03.0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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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이념적 '탈원전'을 넘어②

편집자주 [편집자주]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흔들림이 감지된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선 당분간 원전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는 데 문재인 대통령도 공감했다.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 '감원전' '복원전' 등의 백가쟁명 속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최적의 원자력 정책을 찾아본다.

= 새울원자력본부는 28일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에서 신고리 5호기 원자로건물 격납 철판(CLP:Containment Liner Plate) 3~5단(191톤)을 지상에서 조립해 성공적으로 원자로 건물에 인양 설치했다. 이번 격납 철판 인양에는 국내최초로 2300톤급 크레인이 사용됐다. 2018.2.28/뉴스1  = 새울원자력본부는 28일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에서 신고리 5호기 원자로건물 격납 철판(CLP:Containment Liner Plate) 3~5단(191톤)을 지상에서 조립해 성공적으로 원자로 건물에 인양 설치했다. 이번 격납 철판 인양에는 국내최초로 2300톤급 크레인이 사용됐다. 2018.2.28/뉴스1


"일감 떨어진 걸 버티다 못해 작년 6월부터 직원들 다 내보내고 저만 남았습니다. 원전 생태계를 다 파괴해놓고 원전이 주력 기저전원이라니 부질없는 소리입니다."(부산 원전 부품업체A 대표)

문재인 대통령의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발언에도 원전 납품업체들은 여전히 침체된 분위기다. 원전주가 급등하는 등 장밋빛 희망을 꿈꾸는 증권시장 분위기와 대조적이다. 특히 중소 원전업체들을 중심으로 이미 망가져버린 원전 생태계를 복구하긴 늦었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두산중공업 등 원전 관련 대기업은 2014년 8월 신고리 5·6호기 수주 이후 신규 수주물량이 없어도 원자력발전소 유지·보수 등 일감이 있었다. 원전 외에 기계 등의 부품을 만들던 기업도 다른 생산라인으로 인력을 배치하는 등 자구안을 마련했지만 원전 부품만 납품해오던 중소기업들은 버틸 방안이 없었다.

창립 30주년이 넘은 부산 원전 부품 납품업체 A사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5년째 일감이 끊겼다. 일감 없이 버티던 A사 대표 이모씨는 결국 지난해 6월 직원들을 다 내보냈다. 이 대표는 "1년만 매출이 없어도 회사가 못 버티는데 그 세월이 5년간 지속됐다"며 "옛날 업계종사자들을 돈을 더 주고 데리고 오는 등 방법을 찾아 지원하지 않고선 살아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나마 조금 더 규모가 큰 경남 창원 소재의 원전 부품업체 B사는 원전 부품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직원들을 산업공작기계 등 다른 부품 생산라인으로 배치했다. B사에 재직 중인 김모 이사는 "4년 전 마지막으로 수주해놨던 물량을 납품한 지 오래"라며 "2년 사이에 발주품이 아예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설비 유지 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들은 전환 배치했다"고 말했다. B사도 마지막으로 신입사원을 뽑은 지 3년이 넘었다.

김 이사는 "못 버티고 다른 업종으로 간 인력들도 관련 일을 하지 않다 보니 기술력이 많이 줄었을 것"이라며 "중소기업이 갖고 있는 원전 부품 제작 기술들이 유지돼야 한국 원전 기술력이 유지될 수 있는 건데 이미 원전 제작 기술들은 침체기에 들어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전 주기기의 대형부품을 납품하던 경남 함안군 소재 C사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액정에 들어가는 부품을 중심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했다. 한 때는 전체 회사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던 원전 주기기 대형 부품 매출은 2020년엔 10%대로 줄어들었다.


업계에선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즉각 재개하지 않는 이상 진정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완공된 것과 다름없는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1·2호기를 빠른 시간 내 가동하겠다는 발언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신한울 3·4호기가 재개되더라도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업체들은 1~3년 후에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김 이사는 "원전업계를 살리기 위해선 신한울 3·4호기 공사를 재개해 당장 일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당장 재개되더라도 실제 납품 계약을 맺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금전적인 측면에서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고리 원전 3, 4호기(오른쪽 3호기, 왼쪽 4호기)신고리 원전 3, 4호기(오른쪽 3호기, 왼쪽 4호기)
원자력학계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원자력 관련 전공 학·석·박 신입생은 2016년 802명에서 2020년 524명으로 34.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석사는 182명에서 106명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생이 줄어들면서 원자력 전공 재학생도 같은 기간 2543명에서 2190명으로 13.9% 줄었다.

원자력을 전공하더라도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대학원 진학자는 줄어드는 추세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대학원 진학생 중 원전과 관련 있는 원자력시스템공학 전공자는 2017년 22명에서 2021년 13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방사선공학과 전공자는 1명에서 9명으로 늘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대학원생 중 원자력발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줄고 원자핵공학과를 전공한 학생들 대부분이 핵융합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의 원자력·양자공학과는 2012~2016년 5년간 94명이 진학했지만, 2017~2021년엔 31명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는 같은 기간 87명에서 19명으로 급감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전공을 2학년 때 선택하는 카이스트·유니스트와 달리 경희대 원자력공학과는 신입생이 줄진 않았다"면서도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과생이 많아지고 반수생도 체감상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원자력 연구·개발의 목표가 수출이었던 만큼 원전 정책이 정상화돼야 원전업계도 학계도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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