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초기인 2017년 6월 19일 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며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지난 5년간의 탈원전 정책을 뒤집고, 향후 60년간 원전이 주력이라며 입장을 바꿨다”며 “정권의 잘못된 판단으로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원자력 학계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원전 건설과 운영 일정을 늦춰 놓고 이제 와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빠른 시간 내 정상 가동”을 주문한 신한울 1ㆍ2호기, 신고리 5ㆍ6호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신고리 5ㆍ6호기도 원래 지난해 10월(5호기)과 올해 10월(6호기) 상업 운전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건설이 일시 중단되고 공론화 조사와 내진 성능 향상 추진 등으로 일정이 29개월 지연됐다. 5호기는 2024년 3월, 6호기는 2025년 3월 상업 운전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그러나 탈원전을 외치던 5년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겹치면서 원전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 5조8601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영업 손실을 봤다. 이것도 결국 국민의 부담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실질적 변화는 없는 면피성 발언만 했다”며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는 지금인데 2~3년 이후 가동하는 원전 얘기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이어 “원전 건설 중단으로 인해 일감이 줄어든 협력업체의 도산, 무고한 노동자의 실직 사태는 이미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 말처럼 원전이 60년간 주력 기저 전력원이 될 수 있느냐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60년은 새로 건설되는 최신형 원전의 설계 수명을 의미한다. 당장 2030년까지 설계수명(30~40년)이 끝나는 원전은 고리 2호기를 포함해 모두 10기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고 폐기하는 쪽이다. 해당 원전이 차례대로 가동 중단되면 이를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한다. 미국에선 원전 수명을 연장해 80년까지 쓰기도 한다.
전력거래소 통계를 보면 이달 기준 전력 생산량의 17.5%는 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전력 수요에서 원전 비중은 6.1%(LNG 발전 완전 중단) 또는 7.2%(LNG 발전 일부 유지)로 떨어진다. 이를 보면 “원전이 향후 60년 기저 주력 전원”이란 문 대통령 발언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현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상 2050년이면 재생에너지가 60.1~70.7% 비중을 차지하는 주력 전원 자리를 차지한다. 원전 추가 건설이나 기존 원전 수명 연장을 결정하지 않는 한 원전이 핵심적인 기저 전원 역할을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