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여당의 '사용후핵연료 특별법' 추진은 쇼였나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2.02.23 10:00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노동석

▲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위원사퇴·위원장 사퇴·신임위원장 선임 등 출범 후 1년 넘게 진통을 거듭하던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23개월의 고심 끝에 권고안을 내놓은 것이 지난해 3월이었다. 내용에 있어서 박근혜 정부시절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1차, 2015년)과 별다른 차이가 있을 수 없지만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을 건의한 것은 나름의 진전이라고 여겨졌다. 왜냐하면 원내 절대다수의 의석을 가진 여당이, 탈원전을 추진하는 정부가 법안을 발의하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캠프에 영입된 원자력계 인사가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이라 해도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의결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계획에 대해, 이것만 해도 원자력계는 대환영하고 민주당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한 것도 이런 상황 인식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여당 국회의원 24명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대표발의 김성환 의원·민주당 탄소중립특위 실행위원장)을 발의했고, 산업부는 재검토 권고안에 맞추어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관리 기본계획안을 다시 만들었다.

이런 특별법안은 지금까지도 국회에서 여전히 ‘소관위 심사 진행중’이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는 어떤 내용의 심사가 진행 중인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야당의 반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법안의 처리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음 정부의 부담을 덜어 줄 법안을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이번 정부에서 처리해 줄 이유가 없다는 자각이 뒤늦게 온 것인가. 국회의 법안 처리와 속도는 확실히 ‘선택적’인 것 같다.

사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을 때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1차 안에 모든 내용이 충분히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지난번 기본계획 대로 하면 되는데"였다. 재검토 이유는 탈원전으로 관리해야 할 사용후핵연료 감소였다. 관리대상 사용후핵연료 다발수는 1차에 비해 고작 2만 다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전체는 63.5만 다발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여러 개 건설할 것도 아니고, 부지면적에 영향을 줄 정도의 의미 있는 차이가 아니다.

기본계획 로드맵에 의하면 부지선정절차 착수에서 부지확보까지 13년, 영구처분시설 확보까지는 37년이 소요된다. 1차의 처분시설운영 시점 2053년이 2차에서는 2059년으로 미뤄진 셈이다. 이러니 5년 허송세월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이것이 필자가 알고 있는 원자력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1차 안이 추진되었더라면 ‘지난해에는 부지선정이 완료되고 내년께는 처분전 보관시설 건설이 착수될 예정이었다. 물론 정부계획이라 해서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고준위폐기물 관리시설과 함께 시급하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현재 수조 내에 관리 중인 폐기물을 건식저장 방식으로 변경하는 문제이다. 영구 처분장 건설 전에 수조가 포화된다. 수조 포화시점은 고리와 한빛이 2031년, 한울이 2032년이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식의 변경은 불가피하고 이는 1차 공론화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물론 1,2차 공히 건식저장에 따른 부담을 합리적 수준에서 지원할 것을 지역주민에게 약속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일정기간 물 속에서 보관하고 나면 건식저장을 해도 충분히 안전한 수준으로 된다. 건식저장은 금속용기에 사용후핵연료를 넣고, 이를 콘크리트나 금속으로 차폐한 후 원통형 모양의 사일로를 배치해서 보관하는 방식이다. 건식저장용 캐스크는 테러 등에 대비하기 위해 미사일 충돌 테스트에도 통과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해외의 많은 나라들도 건식저장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원전 운영중인 33개국 중 23개국이 건식저장방식의 시설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내에서만 66개 건식저장 시설이 운영 중이다. 깐깐한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도 건식저장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문헌에 따라서는 습식 보다 건식이 더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다.

굳이 온실가스 배출 문제, 한전의 적자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조가 포화되어 원전이 가동을 멈추는 일이 발생해서는 곤란하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 건식저장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또 법 제정이 늦어진다고 당장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야 여권이 수조포화까지 시간을 끌어 원전 가동을 멈추려 한다는 항간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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