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혼란스러운 원전의 환경성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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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제공
환경부가 지난 연말 확정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 원전을 제외했다. 원전은 초저탄소 에너지원이고, 환경 보전에 유리하다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때늦은 호소도 차갑게 외면해버린 것이다. 원전이 녹색분류체계를 통해서 지속가능한 녹색 에너지(그린 에너지)로 지정되지 않으면 기금이나 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게 된다. 환경부가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마지막으로 대못을 박아버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하고 있는 해외 원전의 수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엇갈린 평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원전에 대한 평가는 정반대였다. 연초에 알려진 ‘유럽형 녹색분류체계’(EU 택소노미) 초안에는 원전이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지속가능한 녹색 에너지로 포함되어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원전이 지난 3년 동안의 심층적인 논의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중대 피해 없음’(Do No Significant Harm·DNSH) 조건에 부합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이번에 확정하는 녹색분류체계는 건설에 필요한 자금과 부지를 확보해서 2045년까지 건설허가를 받은 원전에만 적용된다. 물론 방사성 폐기물이 생물다양성과 수자원 등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춰야 한다. 2030년까지 석탄 발전소를 대체하는 목적으로 건설 허가를 받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70g/kWh 미만의 천연가스 발전소도 녹색 에너지에 포함시켰다.

물론 그동안 탈원전을 고집해왔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원전 의존도가 높은 프랑스·핀란드나 원전 건설을 고려하고 있는 체코·폴란드와 같은 국가들의 입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원전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미국도 지난 연말 ‘원전은 무공해 청정 에너지’라고 선언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캐나다도 원전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과 중공업의 탈탄소화 잠재력을 강조하고 있다.

동일한 목표, 서로 다른 평가

환경부의 녹색분류체계는 ① 온실가스 감축, ②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 ③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④ 순환 경제 전환, ⑤ 오염 방지 및 관리, ⑥ 생물다양성 보전 등 ‘6대 환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녹색경제 활동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담은 것이다. 환경부가 제시한 6대 환경 목표는 사실 EU가 2020년 6월에 제시한 것이었다. 동일한 환경 목표에 대한 환경부와 유럽연합의 평가가 완전히 어긋나버린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환경부의 평가가 온전하게 환경성만으로 근거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전이 초저탄소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유엔에 따르면 원전으로 1kWh(킬로와트시)의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12g에 지나지 않는다. 액화천연가스(LNG)는 40배가 넘는 490g을 배출하고, 태양광도 4배나 되는 48g을 배출한다. 국제 사회에서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알량한 이유 때문에 8년 후인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무려 40%나 감축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초저탄소의 원전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대안일 수밖에 없다.

원전이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산림·경작지 등 환경 보전에 유리하다는 사실도 명백한 진실이다. 발전 설비의 이용률을 고려하면 태양광은 원전의 169배, 풍력은 37배의 면적이 필요하다. 원전의 가동에 필요한 연료인 우라늄은 저장과 수송이 용이하고, 특정 국가에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유리하다.

환경부가 원자력은 녹색에너지에서 배제하고 천연가스를 포함시킨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를 발표했다. 사진은 신한울 1·2호기
환경부가 녹색분류체계에서 원전을 제외시켜버린 결정은 다분히 정치적·이념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맹목적으로 탈원전을 고집해왔던 정부도 원전의 환경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던 적은 없었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경제성’에도 사실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인 유일한 명분은 ‘안전성’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의 수소 폭발 사고가 놀라운 설득력을 제공해주었다. 원전이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것도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었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에 대한 심각한 사회적 갈등도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겼다.

원전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고준위 폐기물의 처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유럽연합의 평가는 달랐다. 원전의 DNSH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평가는 ‘원전이 사람이나 환경에 미치는 위해(리스크)를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안전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총동원하고, 국제적으로 지켜야 하는 협약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하면 충분히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어설픈 결정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조하고 있는 정부의 원전 수출 노력에 정면으로 어깃장을 놓아버린 것이다. 원전의 수출을 위해서는 원활한 재원 조달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해외 원전 수출 시장에서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해놓은 상황이다. 원전이 K 택소노미에서 제외된 상황에서는 국내에서 원전 수출에 필요한 재원 조달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천연가스를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킨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천연가스도 연소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다. 더욱이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온실효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결국 원전은 빼놓고, 천연가스를 포함시킨 환경부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는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을 위한 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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