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대전 유성구 소재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만난 임채영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장은 "20여년간 축적한 국산 SMR 기술이 내년에 의미있는 결실을 맺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발전용량 1400메가와트e(MWe) 규모의 상용 원자력발전소와는 달리 300MWe 이하의 소규모 원자로를 의미하는 SMR은 출력 조절이 용이하고 안전성에 장점이 많아 차세대 원자로 기술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양국간 원전 협력 합의에도 SMR이 포함됐다.
임 소장은 “2021년 한해 동안 국내외에서 SMR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며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이 70여종의 SMR을 현재 개발중”이라고 설명했다.
SMR은 기존 원자로와 원리는 똑같지만 규모가 작아 출력 조절이 용이하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원자로 한 기에서 나오는 열의 총량이 작다는 의미다. 그만큼 원자로를 식히는 데 다양한 방법을 쓸 수 있으며 안전성을 구현하기에도 쉽다. 전세계 개발중인 70여기의 SMR 중 물을 이용해 원자로를 식히는 SMR이 약 30기에 달한다. 이들은 냉각수를 순환시키는 펌프가 없어도 노심 냉각이 가능하다. 나머지 40기는 물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원자로를 식힌다. 대표적인 방식이 소듐으로 냉각하는 소듐냉각고속로(SFR)와 헬륨을 냉각재로 쓰는 초고온가스로, 용융염원자로 등이다.
임 소장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캐나다에서는 한국의 SMR 설계와 안전성 확보 기술이 적용된 SMR 실증 작업이 추진된다. 원자력연구원은 현재 헬륨을 냉각재로 쓰는 초고온 가스로를 오지에 구축하려는 캐나다와 협력하고 있다. 임 소장은 “캐나다가 초고온 가스로의 원자로 안전성 분석 작업을 한국에 맡겨 수행하고 있다”며 “지난 10월 세부설계에 착수했고 내년에 구체화하면 우리 기술 일부가 적용된 실증용 SMR 설계가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새해에는 SMR 기술을 바탕으로 우주용 원자로 개발도 착수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임 소장은 “이미 소규모 연구과제를 시작했고 후속 연구를 위한 기획작업을 진행중”이라며 “산소가 없는 우주환경에서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우주 원자력 연구의 원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특히 유인 달탐사 ‘아르테미스’에 한국이 참여하는 만큼 다양한 우주 기술을 확보하는 게 필요한데 우주 원자력은 중요한 옵션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임 소장은 SMR이 탄소중립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 공정에서 필요한 열원을 화석연료가 아닌 SMR이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 경수용 원자로는 물의 온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있어 300도 정도가 최대치인데 물을 냉각재로 쓰지 않는 SMR은 500~1000도 사이의 열을 중화학 산업에 공급할 수 있다”며 “산업계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일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탄소 수소환원제철 체제로 전환을 모색중인 국내 철강산업에 공급할 수소를 생산하는 데도 SMR이 활용될 수 있다. 전기 대신 고온의 열을 가해 물을 수소로 분리하는 ‘고온 수전해’ 기술에 필요한 열을 SMR이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소장은 “환경 조건에 따라 들쑥날쑥인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SMR 기술이 보완할 수 있다”며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가능성이 큰 SMR을 산업의 반석으로 올려놓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