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폐쇄 공소장을 보니, 산업부는 발버둥치고 있었다 [한삼희의 환경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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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1.22. 오전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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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채희봉-백운규-정재훈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은 ①원전 신규 건설 백지화 ②가동 연한 채운 원전 수명 연장 금지 ③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세 가지다. ①과 ②는 정부 결정만으로 가능하다. ③은 7000억원을 들여 보수까지 마친 막대한 자산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명분과 합법 절차가 필요하다. 정부는 ‘경제성평가 조작’으로 돌파하려 했다. 이로 인해 산업부 국장, 과장, 실무자가 작년 12월 재판에 회부됐다. 이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 6월 기소됐다.

과거엔 중요 사건 경우 기소가 이뤄진 다음 공소장 언론 공개가 관행이었다. 현 정부는 조국 사건을 거치면서 공소장 공개 금지 규정을 만들었다. 요즘 공수처의 언론 사찰 논란으로 번진 ‘이성윤 공소장 유출’ 사건은 그 파생 현상이다. 월성 1호기 사건 역시 공소장 전문이 공개된 적이 없다. 합법적으로 공소장을 확보한 한수원 노조 관계자가 핵심 부분을 몇 차례 발췌해 공개하긴 했다. 그중에서도 2018년 4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의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이란 댓글 내용이 산업부에 전달된 이후 과정은 상세히 보도됐다. 며칠 전 모종의 경로로 백 전 장관 등 세 명의 공소장을 얻게 됐다. 101쪽의 공소장 전체를 읽은 감상은 ‘산업부 공무원들은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2017년 5월 문 정부 출범 직후 산업부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적법 이행 방안을 찾으려 기를 썼다. 당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제시한 것은 국회의 특별법 제정,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 취소의 두 가지였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은 장시간이 소요되고 당시 여소야대 상황에서 이행 가능성이 낮다고 퇴짜를 맞았다. 원안위를 통한 조기 폐쇄는 원안위가 반대했다. 허가 취소할 만한 안전상 문제가 없다는 이유였다.

2017년 가을 검토한 방안은 최상위 에너지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을 수정하자는 것이었다. 2014년 수립한 기존 계획은 원자력을 핵심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었다. 청와대 채희봉 비서관은 “에너지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는데 예상 못 한 논란으로 국정 운영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산업부 국장은 “못 해먹겠다”고 반발한 것으로 공소장에 기록돼 있다.

그다음 추진한 것이 한수원으로부터 조기 폐쇄 의향서를 제출받는 방법이었다. 그런 다음 의향서를 그해 연말 수립 예정이었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시키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되면 한수원 이사회가 정부의 탈원전 전력 계획을 받아 조기 폐쇄 결정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수원은 “왜 우리한테 이걸 시키냐. 정부 방침이라면 산업부가 직접 전력 계획에 써넣으라”고 맞섰다. 한수원 반발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11월 한수원 임원회의에 “자리 보전이 어려울 수 있다”는 분위기가 전달된 뒤, ‘시기는 확정 곤란’이라는 애매한 문구를 끼워 넣어 조기 폐쇄 의향서를 작성했다.

산업부와 한수원 실무자들은 조기 폐쇄하더라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영구 정지 운영 변경 허가가 나기까지 2년 반은 더 가동하자는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12월 초 백운규 전 장관, 채희봉 전 비서관 모두 ‘2년 반 더 가동’ 계획을 승인했다. 2018년 3월에도 두 사람에게 같은 내용이 재차 보고돼 확인 과정을 거쳤다.

그랬던 분위기가 2018년 4월 2일 ‘월성 1호 언제 결정?’이란 문 대통령 댓글에 돌변했다. 백 전 장관은 4월 3일 과장을 “너 죽을래”라고 몰아붙였다. 과장은 4일 청와대 행정관에게 “산업부가 다 뒤집어쓰게 됐으니 (에너지전환 팀장인) 사회수석에게 상황을 보고해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5일 즉각 조기 폐쇄가 대통령 보고까지 끝났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결국 나하고 국장하고 책임질 수밖에 없게 됐다. 퇴로가 끊겼다”고 절망한 것으로 공소장에 나와 있다. 그는 회계법인에 맡긴 경제성 평가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찾아가 ‘안전성을 이유로 조기 폐쇄가 안 되겠느냐’고 다시 한번 타진해봤지만 거절당했다.

공소장 기록을 보면, 산업부 공무원들은 빠져나갈 길을 찾아 몸부림치다 체념하고는, 청와대 뜻을 관철시키는 돌격 부대 역할을 했다. 청와대의 압박, 회유는 모두 채희봉 전 비서관을 통해 전달됐다. 공소장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채 비서관 뒤에서 그를 움직인 사람들이 있다. 누구였는지는 국민이 다 짐작한다. 그로 인해 국가에 수천억 원 이상 손실을 끼쳤다. 장관이란 존재는 청와대 압력에서 직원들을 보호해주는 방패가 되기는커녕 자존심도 벗어던진 허수아비였다. 대통령은 나중 산업부를 위로한다고 3차관 자리를 만들어줬다. 앞으로도 보기 힘들 코미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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