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수원, 이제야 “원전 환경 보전에 유리...초저탄소 에너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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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12.29. 오전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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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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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은 환경 보전에 유리하다” “원전은 초(超)저탄소 에너지원”이라며, 탈원전 반대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힌 의견서를 최근 정부에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수원은 미국·유럽연합(EU)·중국·러시아 등 원전 수출 경쟁국 사례를 들며 “환경부가 마련 중인 ‘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K택소노미)에서 원전을 제외할 경우 해외 원전 수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도 했다. 원전을 육성해야 국가 경쟁력은 물론 환경 보호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정재훈(오른쪽)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12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은 김혜정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국회사진기자단

하지만 환경부는 원전을 제외한 ‘K택소노미 최종안’을 이달 중 확정, 공표할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이달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전은 무공해 청정 에너지”라고 선언하고 유럽연합(EU)이 다음 달 중순 발표할 ‘EU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할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만 세계 주요국 움직임과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한국형 녹색 분류 체계(안) 한수원 검토 의견’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전의 장점과 원전 육성의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분석, 정리한 14쪽짜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택소노미(taxonomy·분류 체계)’는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과 환경 개선에 기여하는 활동을 분류한 목록이다. 이 분류 체계가 중요한 것은 탄소 중립이 세계적 의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각국의 에너지 투자 등 경제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850조원 자산 규모 국민연금 등이 당장 내년부터 K택소노미를 투자 결정에 활용하게 된다.


한수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원전은 탄소 중립 및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위한 주요 감축 수단”이라며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 달라’고 환경부 측에 요청했다. 그러면서 9가지 항목에 걸쳐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선, 원전은 ‘전주기(全週期) 탄소 배출이 매우 적은 초저탄소 전원’이라고 썼다. 전력 1kWh(킬로와트시)를 생산할 때 태양광은 이산화탄소를 27~48g(그램) 배출하는 반면 원전은 12g으로 풍력(11~12g)과 함께 가장 적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수원은 특히 “원전은 국토가 좁은 한국 상황에서 국토의 효율적 이용 및 산림·경작지 등 환경 보존에 유리하다”면서 “원전과 재생에너지 설비의 이용률 등을 고려하면 태양광은 원전의 169배, 풍력은 37배 면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전은 태양광 부지의 0.006%, 풍력 부지의 0.03%만 있어도 된다는 것이다. 원전 원료인 우라늄은 저장과 수송이 편리하고 특정 국가에 집중되지 않아 수급이 용이하기 때문에 “국가 에너지 안보 기여도가 높다”고도 했다.

한수원은 특히 원전 수출 경쟁국 사례를 들며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해 ‘공정한 경쟁 여건’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쟁국인 중국, 러시아는 원전을 녹색 활동으로 분류해 자국 내 재원 조달이 쉬운 편인데, 원전이 K택소노미에서 빠지면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체코, 폴란드 원전 수출에서 경쟁국에 비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고리 6호기에 원자로 설치 - 한국수력원자력은 27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6호기 건설 현장에서‘신고리 6호기 원자로 설치 기념 행사’를 열었다. 원자로는 원자력발전소 핵심 기기로 전체 건설 기간 중 가장 중요한 단계에 해당한다. /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 보고서엔 주요국의 택소노미 동향도 자세히 분석돼 있다. “바이든 정부가 기존 원전과 SMR 등 차세대 원전을 탄소 중립 핵심 대안으로 설정하고 청정에너지기준(CES)에 원전을 포함하는 것을 고려 중”(미국) “프랑스·체코·폴란드 등 원전 수출·건설 예정 7국 총리가 유럽연합 위원회에 원자력 역할 중요성 강조 서한을 보내는 등 EU택소노미에 원자력 포함 가능성 높음”(EU) “에너지 개발 성과와 목표, 향후 미래 에너지 개발 전략을 담은 백서 ‘Energy in China’s New Era’에서 원자력을 청정 에너지로 분류”(중국) “기후 대응 전략 발표 때 SMR의 ‘탄소 배출 저감’ 및 ‘중공업의 탈탄소화 달성’ 잠재력을 강조”(캐나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는 당초 이달 22일 발표가 예고됐던 EU택소노미의 최종 발표 내용을 봐가며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이었다. EU가 원전을 포함하면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EU택소노미 발표가 다음 달 중순으로 연기되자 돌연 EU 발표와 상관없이 원전을 제외한 K택소노미를 확정해 이달 중 공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확정·발표될 최종안은 원전이 포함되지 않은 기존 K택소노미 방안과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다”고 했다. 주한규 서울대 교수는 이에 대해 “정부가 탈원전에 집착해 전 세계 탄소 중립 흐름에서 벗어난 결정을 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부는 내년부터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붙인다는 방침이다. 환경부 등 다섯 부처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판 뉴딜, 탄소 중립’을 주제로 ‘2022년 정부 업무 보고’를 열고 전국에 태양광·풍력 원스톱 허가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거주지에서 1㎞ 넘게 떨어진 곳에만 태양광 설비를 지을 수 있도록 규정한 이격 거리 기준 완화, 댐 지역에 수열·수상 태양광 보급 확대 등 방침도 밝혔다. 이번 업무 보고에는 원전 운용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등에 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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