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5년 허송세월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1.11.25 10:05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문주현 단국대 교수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달에 고리1호기 최종해체계획서 심사를 중단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1호기 최종해체계획서에 사용후핵연료 관리계획이 포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수원은 이 계획서에 ‘고리1호기 사용후핵연료는 정부 정책이 확정되면 계획을 별도로 수립해 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오리무중인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이 원전 이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리1호기 해체계획서 심사 중단은 그나마 파장이 제한적이다. 월성 원전은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이 거의 포화할 때까지 시설 증설 여부를 확정하지 못해 가동이 중단될 뻔했다. 작년 7월 증설 찬반을 묻는 투표에서 경주 시민참여단의 81.4%가 증설에 찬성함으로써, 월성 원전 가동 중단을 겨우 면했다.

그동안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수립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7월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2051년 영구처분장 운영을 목표로 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며, 2019년 5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에 관리정책 재검토를 맡겼다. 재검토위원회는 2021년 4월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하고 활동을 종료했다.

재검토위원회 권고안은 공론화위원회 권고안과 대동소이하다. 재검토위원회는 관리정책의 체계적 이행 보장을 위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독립 행정위원회 신설을 제안했으나, 이는 공론화위원회 권고안과 유사하다. 뾰족한 대안도 만들지 못한 채 아까운 시간만 흘렀다.

2020년 말 기준, 국내 경수로형 원전에는 2만 53다발, 중수로형 원전에는 47만 4176다발, 연구용원자로에는 514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돼 있다. 월성 원전은 기존 저장시설이 2022년 상반기 포화 예정이어서 증설하고 있다. 한빛·고리 원전은 2024년, 한울원전은 2037년, 신월성원전은 2038년에 저장시설이 포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당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 선정 절차와 부지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 전담조직으로서 총리 소속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를 신설하였다. 이 법안이 그간 지지부진했던 현안 해결에 필요한 사항들을 규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 법안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서는 정교한 관리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실제로는 중요하나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다음 사항이 관리정책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첫째, 2016년 기본계획의 관리사업 일정을 준수할 대책이 필요하다. 관리정책을 재검토한다며 허송세월하는 동안에도 사용후핵연료는 쌓여갔다. 관리정책 수립 시기가 연기됐다고, 관리시설의 필요 시점이 그만큼 뒤로 밀린 것은 아니다. 2016년 7월 이후 5년 넘게 허송세월한 기간을 만회해야 한다.

둘째, 담당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특별법안에서처럼 독립 행정위원회 신설은 최소한의 요건이다. 이번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일선에서 이행한 공무원들이 구속되었다. 업무 지시한 상급자는 멀쩡한데 애꿎은 실무자만 구속되었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어느 공무원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관리사업을 소신껏 추진할 수 있겠는가. 담당 공무원이 주인 의식을 갖고 규정에 따라 소신껏 일하고 그 과정 중 발생하는 의도치 않은 실책은 면책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관리사업 수행역량 극대화를 위한 사업수행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별법안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을 관리사업자로 지정하고 있다. 이 기관은 관리사업 관련 직원이 수십 명에 불과하며 이들의 경험도 부족하다. 국내 전문가도 수백 명에 불과한데, 여러 곳에 분산돼 있다. 관리사업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관리정책 수립?이행을 지원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관리사업의 효율적 실행을 위해서는 정책지원 기능을 강화하고 인적자원을 양성하며 산업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는 수행체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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