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원전 반대 사라진 기후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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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2.13. 오전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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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폐막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색다른 풍경은 대규모 국제 행사마다 단골처럼 나오던 환경 단체들 원전(原電) 반대 시위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곳곳에서 원전 기술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고, 초대형 원전 수주 계약이 체결됐다.

지난 11월 13일 세계 약 200개국은 영국 글래스고에서 막을 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석탄발전 단계적 감축 등을 포함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인 '글래스고 기후 조약'에 합의했다. 당사국총회에서 알록 샤르마 의장이 박수를 받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는 루마니아 대통령과 만나 루마니아에 미국 기술로 첫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케리는 “미국은 다른 나라 탄소 저감을 돕고, 양질 일자리를 창출하려 원전을 개척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SMR을 2012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한국에는 아쉽고도 뼈아픈 장면이다.

현재 선진국이 개도국에 나무를 심어주면 탄소 저감 활동을 벌인 것으로 간주하는데 이제 원전 수출도 이런 지원으로 인정될 날이 멀지 않았다. 한 COP26 참석자는 “원전에 대한 비토(veto) 분위기가 거의 없어서 놀랐다”고 전했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행사장에 부스를 마련하고 “원자력은 탄소 중립 달성에 필수”라고 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트라우마처럼 여겨졌던 원전 담론은 10년 만에 제자리를 찾고 있다. 이제 전 세계는 원전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일본은 탄소 중립 계획을 알리는 자리에 ‘후쿠시마의 지나간 10년과 다음 단계’라는 문구를 내걸었고, 영국은 엔진 제조사 롤스로이스가 SMR 16기를 자국에 짓겠다고 하자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 녹색당에는 ‘원자력 에너지를 위한 녹색당원’ 모임이 있고, 기후 위기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독일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에는 원전 찬성론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방사선 모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부탁해요, 원전”이란 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인다. 핀란드는 녹색당이 참여하는 연립정부에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해 원전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쏟아지면서 원전 수명을 연장하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미 스탠퍼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는 최근 2025년 문을 닫기로 했던 캘리포니아 디아블로캐넌 원전을 2045년까지 연장하자고 제안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완벽하게 잘 운영되던 원전을 폐쇄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논평했다.

현 정부는 이런 세계적인 흐름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원전 사고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원전 사고가 날 확률은 기후 위기로 지구가 혼란에 빠질 확률보다 매우 낮다. 국내외에서 원자력이 전(全) 주기, 건설에서 해체까지 전체 기간을 따져 측정해보면 다른 전력원보다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고, 유럽연합(EU)은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하려고 논의하고 있다. 이렇게 신념이 아닌 과학으로 문제를 차근차근 접근해가는 게 선진국 속성이다. 우리는 언제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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