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친원전인데 우리만 탈원전 ‘탈 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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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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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함정에 몸값 높아진 원전

문재인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이 최근 친원전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논란이 뜨겁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특별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40% 이상으로 상향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를 위해 원전 비중을 낮추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 대신 신재생에너지만 고집할 경우 전력난 등 온갖 부작용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세계 각국이 친원전 정책에 속도를 내면서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사진은 경북 울진군 신한울 1호기. (연합뉴스)


▶中 150기 원자로 추가 건설

▷美 제치고 세계 최대 원전국 오를 듯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35년까지 4400억달러(약 518조원)를 투입해 최고 150기 원자로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50기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가 지난 35년간 세운 원전 수보다 많다. 이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25년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원자력 발전국에 오를 전망이다. 현재 미국은 원전 93기, 중국은 52기를 가동 중이다.

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드라이브를 거는 친환경에너지 정책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를 위해 석탄화력 발전소 2990기를 모두 신재생에너지 발전이나 원전으로 대체한다는 목표다. 이 과정에서 원전 역할을 키우기로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세계 1위 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원전을 통해 영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이 생산하는 탄소 배출량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연간 약 15억t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중국뿐 아니다. 전력 부족으로 에너지 위기에 처한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도 잇따라 원전 건설로 방향을 틀었다. 탈원전을 선언했던 프랑스는 최근 10억유로(약 1조4000억원)를 들여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친원전 정책으로 돌아섰다. 20년 넘게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영국도 2050년까지 약 45조원을 투자해 SMR 16기를 건설하기로 했다. 미국도 원전을 청정에너지 전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조 바이든 정부는 차세대 원자로 기술과 SMR 개발에 향후 7년간 32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아이다호주에는 600㎿급 중소형 원전 12기가 새로 건설될 예정이다.

심지어 동일본 대지진 등 원전 사고로 큰 피해를 입었던 일본조차 원전 비중을 늘린다는 입장이다. 원전 중요성을 강조해온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 중 원전 비중 목표치를 20~22%로 유지하기로 하는 새 에너지 계획을 발표했다.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계기로 전면 중단했던 원전을 재가동할 예정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오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 최대 1000기 소형 원전이 건설되고 시장 규모만 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중립 치중하다 부작용 우려

▷원전 기저에너지로 활용해야

원전 투자를 늘리는 세계 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탈원전에 힘쓰는 중이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해 29%였던 원전 발전 비율을 2030년 23.9%, 2050년 6~7%로 낮추고, 6.6%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2030년 30.2%, 2050년 60~70%로 대폭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신한울 3, 4호기, 천지 1, 2호기 등 원전 건설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올해 가동 중인 원전은 24기로 향후 추가 준공될 원전은 신한울 1, 2호기와 신고리 5, 6호기 등 4기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기존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2034년에는 17기로 줄인다.

문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에너지 믹스’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풍력 발전의 경우 초속 11m가 넘어야 경제성 있는 전력 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가 들어설 전남 신안 앞바다 풍속조차 초속 5m 안팎에 불과하다. 태양광 발전 역시 야간이나 구름이 꼈을 때 전기를 생산할 수 없어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우려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원자력이 해법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지속하면서도 해외 원전 시장 개척에 힘쓰는 것을 두고서도 말들이 많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1월 5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피오트르 나임스키 에너지인프라 특임대사와 만나, 한국 기업의 폴란드 원전 사업 참여 지원을 요청했다. 폴란드 정부는 2040년까지 총 원전 6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현재 원전이 없는 폴란드는 EU의 탄소 감축 계획에 따라 2018년부터 원전 건설을 추진해왔다. 이와 함께 정부는 세계 각국이 공들이는 SMR을 상용화하더라도 이를 수출용으로만 사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국내에서는 탈원전에 속도를 내는 정부가 해외 원전 수주, SMR 수출에 나선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적잖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이 SMR 개발에 나서면서 자국 내 전력원으로 활용한다는데 우리는 수출용으로만 한정 짓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해외 원전 수주전에도 총력을 쏟는데 본인도 안 쓰는 물건을 남한테 사라고 하는 격이니 수주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답답함을 토로한다.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원전업체들의 설계, 시공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국내에서는 사실상 신규 사업이 막히면서 해외 시장만 쳐다보는 실정이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탈원전 이전인 2016년 5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원자력 공급업체 매출은 2019년 3조9300억원으로 30%가량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 실현 과정에서 원전 필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우리도 탈원전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리하게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려다 전력난을 맞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원자력학회의 ‘에너지 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50~80%까지 달성하려면 태양광, 풍력 발전 용량을 지금보다 10~40배 늘려야 한다. 이 경우 전기 소비자인 국민은 연간 41조~96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세계 각국이 에너지 위기를 겪으며 원자력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우리도 에너지 공백을 막기 위해 원전을 기저에너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34호 (2021.11.17~2021.11.2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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