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확대 없이 탄소중립 한다는 文정부의 허구 [쓴소리 곧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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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로마 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 발표
원전 확대 외에 해결책 없는데도 아무 대안 없이 차기 정부에 책임 떠넘겨


문재인 대통령이 이탈리아 로마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이상 감축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발표했다. 2030 NDC와 2050 탄소배출 제로에 대한 글로벌 논의는 지난 2019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1.5도 보고서'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IPCC의 보고서 발표 이후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고 그 이전 2030년까지 현격한 탄소 배출 감축을 이뤄야 한다는 논의가 국제사회에서 진행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31일 (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글로벌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석탄가 5배, 유가 2배, LNG 6배 폭등 왜?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인 에너지 사용이 주춤했다. 그런데 금년 들어 국제 석탄 가격뿐 아니라 국제유가 및 천연가스 가격까지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 대란이 발생했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 같은 화석연료 가격 급등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각국이 탄소중립·친환경 정책을 선언하고 탄소를 배출하는 화력발전에 대한 금융 지원도 차단하고 있는 시점에 화석연료 수요는 줄어들고 그 가격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화석연료 가격은 왜 상승하게 된 것일까?

2020년 코로나 발생에 따른 전 세계적 불황으로 에너지 수요가 감소하고 국제유가를 비롯한 화석연료 가격이 급락하자 사람들은 서둘러 재생에너지 시대가 오고 화석연료 시대가 가는 것으로 짐작했다. 미국 최대 석유회사 엑슨모빌 주식은 가격 폭락으로 다우존스지수에서도 퇴출당했다. 그 결과 유전 탐사, 개발 및 석유가공 시설에 대한 투자는 급감했고 미국의 상당수 셰일오일 유전도 폐쇄되었다. 전 세계 화석연료 개발에 대한 투자는 작년에 24% 급감했다. 게다가 중국이 호주와의 외교분쟁으로 호주산 석탄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던 차에 올여름 홍수로 중국 산시성 등 여러 지역의 탄광이 물에 잠겨 중국의 석탄 생산량이 급감하자 중국의 석탄 가격은 급등했고 전력 생산 차질로 곳곳에서 정전이 발생했으며 많은 공장이 가동하지 못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0월을 비교하면 국제 석탄 가격은 톤당 56달러에서 243달러로,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유 기준으로 배럴당 41달러에서 82달러로, LNG 국제 현물가격은 5달러에서 33달러 수준으로 4~6배 급등한 것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을 가장 반기는 국가는 이른바 OPEC+라는 산유국들과 러시아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발틱해를 가로질러 독일로 연결된 노르트스트림(Nordstream) Ⅱ 가스 파이프라인이 완공되자 천연가스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유럽 국가들에 고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듯 러시아는 COP26에 불참했다. 갈 길이 먼 중국도 2060년까지 시한을 연장했으며 인도는 탄소중립 목표 시한을 2070년으로 20년 연장했다. 전 세계가 동일한 속도로 화석연료 공급을 줄일 수 없는 현재 사정을 고려할 때 일부 선진국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은 결국 OPEC+의 입지만 키워줄 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이 장기적으로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화석 에너지를 줄이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한다 하더라도 목표를 세우는 '내비 찍는 일'과 당장 먹고살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는 '운전하는 일'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가더라도 일단은 눈앞의 신호등, 다른 차량 및 보행자에게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리 장기적 목표가 중요하더라도 오늘 당장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의 정상적인 생활은 전면 불가능해진다. 목표는 목표대로 중요하겠지만 당장 갈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어떤 화려한 탄소중립 목표를 세웠을지라도 오늘 사용해야 하는 에너지가 없으면 안 된다. 올여름 우리도 전력이 모자라 석탄발전소를 풀가동한 바 있다. 먼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마음이 들떠 석탄화력을 일부라도 폐쇄했더라면 올여름 전력공급은 큰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목표만 화려하고 오늘 당장 사용할 에너지 없어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 가파른 속도로 화석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실질적으로 줄여 나갈 노력을 우리 정부는 기울이고 있지 않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한편으로는 원전의 비중을 확대하는 일이며 또 한편으로는 에너지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탈원전을 고집하고 있으며 에너지 가격 인상에 매우 인색하다. 올 4분기에 전기요금을 kW당 3원 올렸지만 1분기에 3원을 내렸고 연료가격이 4~6배 올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금년도 전기요금은 내려간 셈이라고 봐야 한다. 한전은 부채가 66조7000억원으로 급증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불량 공기업으로 전락할 판이다. 민수용 도시가스 요금도 동결했고 산업용과 발전용 LNG 가격만 올렸으며 지역난방 요금도 동결 상태다. 기재부에서는 휘발유 가격을 깎아주기 위해 유류세를 20%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대선을 앞두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 정작 올려야 할 에너지 가격을 동결한 셈이다. 현 정부는 에너지 사용 감축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큰 그림과 목표를 세우고, 그 짐을 다음 정부와 그다음 정부에 떠맡기고 있다. '내 임기 동안에는 안 된다'는 NIMT(not in my term) 현상의 백미를 보는 것 같다. 자신이 운전하지 않을 것을 알고 길도 없는 곳에 내비를 찍고 가라는 것이 현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에너지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숭실대 교수로 있다. 녹색성장위원, 자원경제학회장, 기독교경제학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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