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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덕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 |
문제 인식에 실패해 결과를 망친 사례는 너무나 많다. 기업 사례로는 개방과 협력에 둔감하여 기존 1등 제품만 고집했던 노키아나 닌텐도의 몰락이 있고 국가 사례로는 구소련의 해체, 영국과 미국 원자력 산업의 붕괴 등이 있다. 사례는 많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해 지금도 문제 인식에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얼마 전 국회 원내 총무들과 문재인 대통령이 마주 앉는 기회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 원자력과 관련한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 인식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는 일방적 자료 선택의 문제다. 입맛에 맞는 자료만 선택해 그것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탈원전은 유럽의 다른 나라처럼 칼 같은 탈원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마치 유럽의 다수 국가가 칼같이 탈원전을 한 것처럼 들린다. 사실은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극히 소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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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중 이탈리아는 추진하던 건설을 취소했을 뿐이고 스위스는 인허가 기간까지 운전 후 폐쇄하는 단계적 폐쇄를 선언했다. 굳이 문 대통령의 말에 맞는 사례를 찾는다면 독일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가동 중인 원전을 정지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 소위 '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한 나라의 예를 일반화하여 대다수의 나라가 그런 것으로 말할 수 있는가?
더구나 독일은 우리와 달리 지난 20년 동안 탈원전 정책과 친원전 정책을 반복하면서 정책을 바꿀 때마다 여론을 수렴하고 법을 만들어 정책을 뒷받침했다. 게다가 독일은 필요시 이웃 나라에서 전력을 수입할 수도 있고 갈탄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 우리와 상황이 다른 나라이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이렇게 선택적인 자료만으로 만들어 간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둘째는 단편적으로 통계를 이해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설비가 과잉이고 전력예비율이 30% 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설비가 과잉이라고 판단한다면 가스발전소 등 다른 발전소는 왜 계속 건설하는지... 논리가 궁색해지는 것을 모르는가? 또한 가스발전소를 늘리며 원전을 줄인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전력요금의 상승과 이로 인해 국민들이 받을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전력예비율 30%가 많다고 한다면 독일이나 일본의 예비율이 각각 150%와 108%인 것을 어찌 설명하려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독일을 따라간다면서 왜 예비율은 따라가지 않는가? 폭염이나 혹한으로 나타날 전력 소비 증가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집권이 끝난 후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이 무엇인지 전혀 안개 속이다. 좁게는 전력 안보의 위기를 넓게는 에너지 안보의 위기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셋째는 산업체 운영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 문 대통령은 '두산중공업의 원전 비중이 적어 두산과 탈원전은 관련이 없다'고 했지만 기업 운영에서는 사업의 비중보다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익을 창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음을 보여 준 발언일 뿐이다. 두산의 경우 화력 부문은 해외 진출을 위해 출혈 경쟁으로 발판을 마련하는 단계이고 원자력은 세계 최고의 기술로 이익을 낼 수 있는 단계에 와 있기에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는 것이 두산 경영의 핵심이다. 이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단적으로 잘라서 평가한다는 것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 이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국제 에너지 환경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95%이상의 에너지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기에 다른 나라보다 더 에너지 안보 위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대통령이 늘리려고 하는 천연가스는 수송 측면에서 그동안 정치적인 상황만 변수로 고려하였지만 이제는 환경적, 감염병적인 위해를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가 경제가 치명적인 폐해를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생각이 못 미치고 있음에 안타깝다.
에너지 정책은 이념화, 정치화의 수단이 아니다. 기술적, 경제적, 환경적 요인에 바탕을 둔 정책이어야 한다. 에너지 전문가들의 지속적인 지적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정책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문 대통령이 나라의 앞길을 막고 있다. 탈원전이라는 이념에 매몰돼 에너지 안보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현실을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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