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 논설위원의 환경칼럼] '월성 원전 1호' 폐쇄… 왜곡된 결정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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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27. 오후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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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이 올린 보고서엔 '경제성 있다' 결론 명확한데… 이 정권 누가 왜곡을 주도했나
보고서는 가동률 60% 가정했는데, 한수원은 40% 주장하며 "폐쇄"



월성 원전 1호기 영구 정지에 관한 경제성 평가 보고서를 입수해 읽어보고 경악(驚愕)했다. 작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할 때 근거로 삼았다는 보고서다. 읽기 전까지는 보고서가 모호한 내용이어서 여러 해석의 여지를 뒀을 걸로 짐작했다. 한수원 경영진이 그걸 교묘히 요약 편집해 '영구 정지'로 유도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게 아니었다. 보고서는 명확하게 "월성 1호기는 계속 가동하는 것이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짓고 있었다.

시계추를 돌려 정리해보면 이렇다. 한수원 이사 12명 가운데 조성진 경성대 교수가 유일하게 월성 1호 폐쇄에 반대했다. 조 교수는 "불과 며칠 전 이사회 소집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이사회는 통상 한수원 서울사무소에서 열어왔는데 그날은 장소도 알려주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한수원 직원들에게 이끌려 홍은동 호텔로 갔다. 한수원은 그에 앞서 5월 10일 사외이사 7명 가운데 3명을 새로 선임했다. 한 명은 탈원전 활동 교수, 또 한 명은 여당 원외 인사였다. 한수원은 이사회에서 "법무법인 두 곳에 자문한 결과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사들이 민사 책임이나 형사상 배임죄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걸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6월 삼덕회계법인이 한국수력원자력에 제출한 ‘월성 1호기 운영정책 검토를 위한 경제성 평가 용역 보고서’ 표지(왼쪽). 삼덕회계법인은 경제성 분석 결과, “중립적 시나리오(원전 이용률 60%)에서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224억1700만원의 경제성이 있다고 분석됐다”고 했다. 한수원은 국회에 이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중요 수치는 모두 먹칠을 했다(오른쪽). 먹칠 옆 숫자는 국회가 한수원에서 구두 설명을 듣고 표기해 놓은 것이다. /국회


한수원은 그 자리서 표지 포함 5장짜리 안건 자료를 배포했다. 핵심은 월성 1호기를 2022년 11월까지 4년 5개월간 더 정상 가동할 경우 즉각 가동 중지하는 것에 대비해 한수원에 어떤 이득(또는 손실)을 가져오느냐는 것이었다. 관련 표가 있었는데 이용률(가동률) 40%일 경우 '손실 563억', 60%는 '이득 224억', 80%는 '이득 1010억'으로 기재돼 있었다.

경제성이 제로가 되는 이용률은 54.4%였다. 그런데 한수원은 "최근 강화된 규제 환경에서 현재보다 높은 수준의 이용률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2017년 이용률이 40.6%였다는 것이 근거였다.

49쪽짜리 경제성 평가 보고서는 삼덕회계법인이 작성한 것이다. 이사회 나흘 전에 한수원에 제출됐다. 보고서가 이용률 40%, 60%, 80%의 세 시나리오를 비교한 것은 맞는다. 그러나 보고서는 '기본 가정' 항목에서 "향후 이용률은 60%로 가정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60%를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봤고, 40%와 80%는 '비관'과 '낙관' 상황의 참고용(參考用)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60% 이용률' 자체도 아주 비관적 가정이다. 월성 1호기의 과거 35년 이용률이 78.3%였다. 국내 원전 20곳의 2001~2010년 평균은 92.6%였다. 후쿠시마 사고와 탈원전 정책으로 이용률이 크게 둔화된 2011~2018년 평균치가 79.5%다. 세계 원전 평균 이용률도 자료가 확인된 2006~2014년 9년 평균이 76.0%였다. 이런 걸 종합 감안하면 월성 1호의 정상 가동률은 80% 정도로 잡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출범 직후 "선박 운항 연령을 연장한 세월호와 비슷하다"면서 월성 1호 가동을 중단시키고 장기 점검에 들어갔다. 그 탓에 2017년 이용률이 40.6%로 떨어졌다. 조성진 교수는 "택시 회사가 택시 운행하지 말라고 해놓고 기사더러 운행 실적이 나쁘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했다.

삼덕회계법인 평가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중립(60%) 시나리오에서 '계속 가동'이 경제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경제성 평가와 다른 (즉시 정지) 결정을 하려면 손실 보전(補塡)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월성 1호 계속 가동을 전제로 7000억원의 대규모 설비투자를 했는데 가동 중단으로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정부로부터 보전을 받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한수원도 이사회 보고 자료에서 "정부에 보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자기들이 경제성이 나쁘다는 판단 아래 폐쇄한 거라면 정부에 손실 보전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 결국 경제성 평가가 아니라 정부 압력으로 폐쇄한다는 것을 인정했던 것이다.

한수원은 멀쩡한 원전의 폐쇄 결정을 유도하면서 경제성 평가 보고서를 이사들에게 보여주지도 않았다. 짜깁기 요약 자료만 내놨다. 국회에도 '영업 비밀'이라며 제출을 한동안 거부했다. 결국 국회에 낸 보고서도 주요 수치는 다 먹칠을 해놓은 상태였다. 국회는 참지 못하고 지난 9월 30일 본회의에서 '월성 1호 조기 폐쇄 타당성 및 이사들 배임에 대한 감사원 감사 요구안'을 재석 203명 가운데 162명 찬성으로 가결했다. 감사원도 고민스러울 것이다.

누군가 지금 누리는 영화가 나중의 책임 추궁 리스크를 압도할 만큼 달콤하다고 판단했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일을 벌였을 것이다.

[한삼희 논설위원 sh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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