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오죽하면 한전 사장이 이런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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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은 현 정권의 聖域… 대통령 주변 모두가 숨죽여
김종갑 사장은 '탈원전 재고'… 원전·재생에너지 함께 가야


박은호 논설위원

현 정권 간판 정책들이 집권 3년 차에 줄줄이 후퇴하거나 수정되고 있다. 환경단체를 등에 업고 곧 허물 것처럼 말하던 4대강 보(洑) 해체는 올여름 담당 장관이 "계획 수립에만 4년 걸린다"며 진작 발을 뺐다. 이 정권에선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소득 주도 성장을 한다며 2년간 30% 가까이 올린 최저임금 인상은 내년엔 2.9%로 물러났다. 그제는 300인 미만 사업장 대상 주 52시간 근무제를 사실상 연기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은 끄떡도 안 한다. 한전이 사상 최대 적자를 내고, 온실가스 배출이 늘고,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가 전국에서 수십 건 잇따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인다. 2030년 전력 믹스(mix)를 결정하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대통령 뜻이 워낙 강하다. 탈원전 기조는 변경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다. 과거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현 정권엔 탈원전이 성역이라는 말도 나온다.

태양광·풍력으로 원전을 대체(탈원전)하면 국민이 더 안전해지고 LNG로 석탄발전을 대신(탈석탄)하면 온실가스·미세먼지를 줄여 기후변화 대응과 국민 건강을 동시에 지킬 수 있다는 게 정부 논리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석탄 공백을 LNG가 아니라 원전으로 메우면 효과는 훨씬 커진다. 안전성도 원전이 가장 뛰어나다. 영국 옥스퍼드대에 따르면 전기 1TWh(테라와트시) 생산할 때 대기 오염 등으로 숨지는 사람이 원전(0.07명)은 석탄(24.6명)의 0.04%, LNG(2.8명)의 2.5%다.

탈원전 위험을 경고한 국제 연구 결과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는 '독일·일본이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이 아니라 석탄 발전을 줄였으면 어땠을까'란 가정을 세우고 연구해보니 '그랬다면 2011~ 2017년까지 대기 오염으로 2만8000명 숨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매년 4000명씩 두 나라 국민이 7년간 애꿎게 숨졌다는 것이다. 독일 연간 배출량(7억t)의 세 배 넘는 24억t 온실가스 감축도 가능했다. 독일이 지금이라도 탈원전을 포기하면 '2035년까지 1만6000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게 연구팀 결론이다. 독일 노동연구원(IZA)도 지난달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일본 전역에서 혹한 등으로 4500명 넘는 사람이 숨졌다" "이는 사고 이후 피난 과정에서 숨진 사망자(1200여명)보다 훨씬 큰 규모"라는 것이다. 막연한 원전 공포가 더 큰 비극을 부른 셈이다.

원전이 절대선이라는 게 아니다.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환경성, 경제성, 안전성,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만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에너지 정책을 세우자는 것이다. 우리도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당연히 늘려야 하지만 부작용에 대비하며 속도 조절을 하자는 것이다. 백업 전원으로 가동되는 LNG 발전은 태양광이 대폭 늘면 급가동·급정지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러면 엄청난 양의 미세 먼지, 온실가스가 나온다는 국내외 실증 연구 결과들이 있다. 탈원전 구호 아래 이런 객관적 사실이 무시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탈원전 선봉대 격인 한전 김종갑 사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적어도 2050년까지는 원전을 끌고 가면서 환경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모두 숨죽이는 가운데 나온 전력 전문가의 소신 발언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탈원전을 재고해야 한다.

[박은호 논설위원 uno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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