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전·세·가' 3대 걱정 잡을 원전 놔두고… 비싼 LNG 3배 더 늘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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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14. 오전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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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호 논설위원이 본 전기요금 해법, 정답 찾기]

LNG 발전단가, 원전의 2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은 4배
"전기료 인상 없다" 외쳤던 정부, 내년 상반기 요금체계 개편키로
독일 탈원전 정책 후 전기요금 가정용 3배, 산업용은 4배 인상


박은호 논설위원


"(탈원전을 해도) 전기 요금이 절대 올라갈 수 없다. 그것은 삼척동자도 간단하게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해 보면 알 수 있다." 현 정권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백운규 당시 산업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도 "현 정부 임기 내 전기 요금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정권 임기 반환점을 돌면서 전기 요금 인상은 시간문제라는 걸 삼척동자도 알 만한 상황으로 변했다. 탈원전 정책 뒷받침하느라 경영 실적이 곤두박질한 한전이 "두부(전기) 값이 콩(원료) 값보다 싸다"며 비명을 지르자 정부도 내년 상반기 중 전기 요금 체계 개편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전기 요금 개편은 한전의 경영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만 추진하는 게 아니다. 미세 먼지를 줄이고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국가 주요 정책과 직접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는 내년 상반기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 방안'을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과 태양광·풍력 등을 늘리는 대신 석탄·석유·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 발전을 줄이면 된다. 정부도 기본적으로 이런 방향에 서 있다. 2년 전 수립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을 20%로 늘리고 노후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는 방안 등이 담긴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한 다음에도 3410만t의 온실가스를 더 감축해야 한다는 점이다. 3410만t은 어마어마한 규모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500㎿(메가와트)급 석탄발전소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300만t 정도"라며 "8차 전력 계획에 포함된 조치에 이어 석탄발전소 11기를 더 없애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석탄발전을 무엇으로 대체할지 결정하려면 고려해야 할 요소가 여럿이다. 경제성(발전 단가)은 물론이고 환경성(미세 먼지), 기후변화 대응(온실가스) 문제까지 두루 감안해야 한다.

◇탈원전·탈석탄 동시 추진한다는 정부

정부는 경제성에 앞서 환경·기후변화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값이 싼) 석탄을 대폭 줄이는 대신 LNG 발전을 그만큼 늘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전력 1kWh 생산하는 데 석탄은 온실가스를 904g(그램), LNG는 386g 배출한다. 미세 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도 LNG가 훨씬 적다. LNG를 쓰면 석탄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개선을 더 쉽게 달성할 수 있다. 9차 전력수급계획 수립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과학기술대 유승훈 교수는 "2030년 LNG 전력 생산 비율을 당초 19%에서 29%로 늘리고, 석탄 비율을 36%에서 26%로 낮추면 전력 공급에 문제가 없으면서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LNG 비중을 29%로 늘릴 경우 2015년 수립 계획(8%)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난다.





대신 전기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전력 1kWh 생산에 드는 비용은 석탄(81.8원)이 원자력(62.1원)에 이어 둘째로 싸다. 정유섭 의원실이 한전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LNG(121원) 발전 단가는 원전의 두 배 수준이고, 태양광·풍력도 각종 보조금 등을 모두 합할 경우 250원 안팎으로 치솟는다. 석탄 대신 LNG나 재생에너지 발전을 더 늘리면 발전 단가가 48~200% 커지는 것이다. 현 정권 출범 후 신규 원전 6기 건설 백지화, 7000억원 들여 보수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2030년까지 노후 원전 10기의 수명 연장 중단 등 조치가 나왔다. 그런 탈원전 대책으로 원전보다 네 배는 비싼 태양광발전을 대폭 늘리더니, 이번에는 탈석탄 한다며 LNG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전기 요금 인상, 정부 전망보다 2배"





문제는 탈원전, 탈석탄 부담이 국민과 기업에 전기 요금 인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앞서 탈원전 정책을 시행한 독일 사례가 그렇다. 탈원전 이전인 2000년에 비해 가정용 전기 요금은 세 배, 산업용 요금은 네 배가량 올랐다. 전기 요금 인상의 상당 부분은 재생에너지 보조금이 차지한다. 2000년 전력 1kWh당 2.6원 지급하던 보조금이 지금은 82원으로 32배 뛰었다. 월 350kWh 전기 사용 가구는 요금을 매월 2만8000원 더 내야 한다. 보조금 외에 세금 인상과 송전 비용 부담금 등까지 더하면 전기 요금 인상 폭은 이보다 훨씬 더 크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중단한 일본 역시 보조금이 12배(2.4원→28원) 정도 올랐다〈그래픽〉.

한전 등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지급된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2조6000억원이다. 이를 전기 요금에 반영하면 1kWh당 2.5원 수준이다. 독일·일본의 탈원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가 탈원전을 계속 고집하면 독일·일본처럼 요금 부담이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노동석 박사는 "기술 발전 등으로 태양광·풍력발전에 드는 비용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더라도 탈원전, 탈석탄으로 인해 2040년 전기 요금은 지금보다 40% 이상 오를 전망"이라고 했다. 2030년 전기 요금 인상률은 26~29%로 내다봤다. 그간 정부가 누누이 강조한 추정치(10.9%)의 두 배가 넘는다.

태양광·풍력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값싸고 안전하기까지 한 에너지원이 원전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 따르면 전기 1TWh(테라와트시)를 생산할 때 대기오염 등으로 숨지는 사망자가 원전은 0.07명인 데 반해 LNG는 2.8명, 석탄은 24.6명이다. 정부가 탈원전을 포기하면 환경성, 경제성을 높이면서 기후변화 대응 효율을 높이고 동시에 건강 악영향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원전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온 '우려하는 과학자 연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원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면 향후 20년간 태양광·풍력 등에 대한 투자가 5배 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 대중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탈원전에 이어 탈석탄까지 동시에 밀어붙인다. 이렇게 거꾸로 가도 되는 건지 걱정스럽다.

[일본, 1년간 원전 54기 멈췄더니… 전기료 38%까지 올라]

시민들 난방 줄여 사망자 폭증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전역에서 운영하던 원자로(54기)가 1년 넘게 전면 중단됐다. 혹시 모를 후속 사고에 대비하고 일본 국민의 불안감을 달래려는 조치였다. 그런데 원전 가동을 갑자기 줄여 석탄·LNG 등 화석연료 발전을 늘리자 전기 요금이 폭등했다. 도쿄·홋카이도·간사이 등 원전 의존도가 높은 곳에선 사고 이전보다 요금이 29~38%까지 올랐다. 이런 전기 요금 인상은 일본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독일노동연구원(IZA)은 지난달 펴낸 보고서에서 일본 전체 인구의 30%가 거주하는 도쿄 등 도시 21곳의 2007~2014년 사망률, 전기 요금, 기온 등 데이터를 토대로 전기 요금 인상 효과를 분석했다. 요금이 오르자 지역별 전기 사용량은 사고 이전보다 1~8% 줄었다. 주로 겨울철 난방을 줄였다고 한다. 그 결과 "(혹한 등으로 인한) 도시 21곳의 사망자가 사고 이전보다 적어도 1280명 더 나왔고 이를 일본 전역으로 확대하면 4500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일본 원전 사고에 따른 방사선 오염 사망자는 없지만 피난을 떠난 주민 가운데 1200여 명이 스트레스·지병 등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IZA는 "원전 사고에 따른 사망자보다 전기 사용을 줄여 숨진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면서 "일본이 원전 가동을 중단한 것이 득보다 실이 더 컸다"고 했다. 화석연료 사용이 늘면 공기 질 악화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IZA는 "이번 분석에 포함하지 않은 공기질 악화 효과까지 감안하면 원전 가동 중단의 영향은 더 커진다"고 했다.

[박은호 논설위원 uno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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