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원전 생태계 이렇게 무너지게 내버려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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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 등이 단독·일괄 수주를 노렸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 정비사업 수주가 반쪽짜리에 그쳤다. 계약 기간은 전체 사업 예상기간인 10~15년에서 5년으로 줄었고 그나마 미국과 영국 등 경쟁 업체와 함께 나눠 맡는 구조다. 최대 2조~3조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됐던 수주금액은 수천억 원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이 있는 시장에서 목표를 100%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학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번 수주는 꺼림칙한 느낌이 있다. 바라카 원전 사업은 한국 원전 수출 1호로 건설·운영·핵연료·정비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로 구성된다. 건설만큼이나 유지·보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걸 해외 경쟁사들과 나눠 하다 보면 한국형 원전의 기술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원전 강국'의 쇠퇴가 바야흐로 가시화하는 듯한 불안감이다. 바라카 원전 운영사인 나와에너지는 복수 업체 선정이 "한국의 원전 정책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원전 정책이 UAE 측에 신뢰를 줬을 리 만무하다. 지금 한국에선 탈원전으로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인력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 나라에 10년 이상 장기 독점계약을 맡기기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이대로라면 세계 원전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존재감은 순식간에 소멸할 가능성이 있다. 원자력 생태계가 어떻게든 유지되려면 원전이 지속적으로 건설돼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중단되면서 관련 업체들의 일감이 끊겨버렸다. 한국원자력학회에 따르면 탈원전 이후 주요 협력업체 40%가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6개 시공사 인력은 2년 사이 22.5% 감소했다. 대학 원자력학과 졸업자 취업률은 50%대에서 30%대로 급락했다. 원자력 전공자들 중 자퇴나 복수전공을 택하는 비중이 늘고 일부 대학은 아예 학과를 폐지했다. 현 정부는 한국에서 모든 원전이 멈추는 시점을 2080년께로 잡고 있지만 생태계가 붕괴하는 데는 몇 년이면 충분하다. 국내 원전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나라가 수출한다는 것은 공상 같은 얘기다. 원전 비중을 줄여가더라도 생태계 명맥은 이어지게 해야 한다. 5년 임기 정권이 100년 국가대계의 퇴로마저 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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