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원전 연구개발(R&D) 위축, 기술·두뇌 유출, 수주 감소 등이 본격화하면서 원자력 생태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원전 기술력의 종잣돈 역할을 해온 R&D 기금도 2025년 이후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전문가들은 “원자력계에서 쌓아온 기술적·산업적 역량이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남아 있는 가동 원전의 60년 안전도 담보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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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R&D, 2025년 이후 급감

한국원자력학회는 23일 탈원전 정책이 원자력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미래특별위원회 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해 10월 학회 원로회원을 중심으로 발족된 미래특별위는 지난해 말부터 원자력 생태계를 인력, 연구, 산업 세 부문으로 나눠 탈원전 정책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 축소로 인해 원자력 R&D 기금은 2025년 정점을 찍은 뒤 급감할 것으로 예측됐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 발전량에 연동(1.2원/㎾h)해 기금을 출연하기 때문이다. 이 기금(작년 1912억원)은 전체 원자력 R&D 연간 투자액(약 3000억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탈원전 기조가 지속된다면 연구개발기금 감소로 전체 R&D 역량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게 학회의 설명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 따르면 1959년 원자력연구원이 설립된 이후 지난해까지 투입된 R&D 예산은 10조원가량이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경제적 효과는 164조원에 달했다.

원자력 R&D 역량이 흔들리면 원전 안전도 위협받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덕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은 “이대로 가면 가동 중인 원전의 60년 안전 운영조차 담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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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 유출-기술 경쟁력 하락…악순환”

원자력이 기피 분야가 되면서 인재들도 떠나가고 있다. 학회가 원자력 관련 학과가 설치된 국내 18개 대학을 전수조사한 결과 학업을 중도 포기한 학생은 2015년 24명에서 지난해 56명으로 늘었다. 진학률은 하락세다. KAIST에서 올해 원자력 및 양자공학 전공을 선택한 학생은 네 명에 불과했다. 지난 10년 사이 가장 적은 숫자다. 이 학교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뒤 2학년 진학 직전 전공을 정한다.

학회는 탈원전 정책으로 산업 인프라가 이미 붕괴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원전 설계회사 매출과 하도급 발주가 감소했고 두산중공업의 90여 개 주요 협력업체는 절반가량이 구조조정을 했다”며 “정부는 원전해체산업을 대체산업으로 제시하지만 건설사업에 비해 전후방산업 효과가 작아 원자력산업을 지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한전KPS의 자발적 퇴직자도 2015~2016년 170명에서 2017~2018년 264명으로 급증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