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문 前 대표'가 치우게 한 1950억짜리 담수화 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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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4.10. 오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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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환경단체들 반대 운동 "고리 원전 삼중수소 오염" 주장
20년간 하루 2L씩 먹어도 '생멸치 한 마리' 방사능 흡수 수준
430번 수질검사에서 '食水 적합'… 그래도 결국 공업용수로 쓰기로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환경부, 부산시, 수자원공사, 두산중공업의 4개 기관이 오늘(10일) 서울에서 부산 기장군 해수담수화 시설 관련 업무협력 협약을 맺는다. 기장 해수담수화 공장은 1954억원을 들여 5년 공사 끝에 2015년 10월 완공했다. 원래 기장 일대 5만 가정에 수돗물로 공급하려 했다. 그걸 포기하고 공업용수로 쓰기로 했고, 어느 공단에 어떻게 공급할지 협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먹는 물 만들려고 지은 시설인데 그걸 공업용수로 쓰기로 했다니 답답한 일이다. 울산 온산공단, 고리 원전 등에 공급한다는데 그러려면 650억 예산을 더 들여 40㎞ 이상 관로(管路)를 새로 깔아야 한다.

부산은 낙동강 최하류 물을 정수해 수돗물을 생산한다. 깨끗한 대체 수원(水源) 확보는 부산의 숙원이었다. 해수담수화 공장은 그 시도의 하나였다. 역(逆)삼투압 기술로 바닷물의 염분과 불순물을 걸러낸다. 단일 설비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이 사업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6년 기획됐다. 착공은 이명박 대통령, 완공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청정 상수원 확보를 부산 지역 대선 공약의 하나로 제시했었다.

그런데 지역 환경·시민 단체들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 오염 가능성을 제기했다. 11.3㎞ 떨어진 고리 원전에서 배출한 냉각수 속 삼중수소가 기장 앞바다까지 오염시켰을 수 있고 그건 역삼투압으로도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격렬한 반대운동이 벌어졌고, 기장군의회도 2013년 12월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반대를 의결했다. 2016년 3월엔 지역 단체가 주관한 주민 찬반투표에서 89.3%가 반대했다.

지난 1월 방사선안전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이재기 한양대 명예교수(원자력공학)로부터 아직 출간 안 됐다는 '방사선 위험 바로 알기'라는 책 원고를 얻어 읽어봤다.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발주받아 대중 교육용으로 쓴 218쪽짜리 원고다. 거기에 기장 해수담수화 공장에 관한 상세 설명이 있다. 이 교수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방사선방어학회 회장,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위원, 한국방사선안전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전문가다.

이 교수 설명을 보면, 삼중수소는 과거 핵실험 과정에서 많이 생성돼 대기권에 퍼졌다. 우주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우주방사선 영향으로도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이런 요인으로 빗물(L당 0.5~1.7베크렐)은 물론 지하수(0.1~10베크렐), 강물(1~2베크렐), 연안 해수(0.4~1.1 베크렐) 등에 다 들어 있다. 이 교수 시뮬레이션으로는 고리 원전에서 나온 삼중수소가 기장 앞바다까지 오면 많아야 바닷물 L당 0.3베크렐 추가되는 수준이다. 이 교수는 "10g짜리 생멸치 한 마리를 먹을 때 멸치 속 칼륨-40 등 방사성 물질의 위해성이 담수화 수돗물을 하루 2L씩 20년간 마실 때 흡수하는 삼중수소 위해성보다 크다"고 했다. 담수화 물은 천연 미네랄을 첨가해 물맛도 좋다는 것이다. 그간 기장 담수화 수돗물에 대해선 전문 기관이 430번의 수질검사를 했지만 모두 식수 적합 판정을 받았다. 미국위생재단(NSF)에 의뢰한 247종 수질 테스트에서도 방사성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을 아무리 설명하고 홍보해도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지역 단체들은 '우리를 담수화 설비의 실험용 쥐로 사용하지 말라'고 외쳤다.

정치 집단도 선동에 동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은 2015년 11월 '안전 보장이 안 된 식수 공급에 반대한다'고 성명을 냈다. 현 오거돈 부산시장 역시 후보 시절 해수담수화 식수 공급 반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교수 책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전(前) 대표' 직함으로 2016년 9월 13일 고리 원전을 방문했을 때의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 탁자에는 '해수담수화 수돗물'이 담긴 페트병 물이 놓여 있었다. 문 전 대표가 그걸 보고 "해수담수화 물에 대해 주민들의 염려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리 당은 주민들을 대변하는 입장이다. 이 자리에 해수담수화 물을 갖다 놓은 것은 홍보하는 것 같아 적절치 못하다. 우리 쪽 자리에서는 수거해달라"고 했다. 탁자 위 물은 제주산 생수로 교체됐다.

이 교수는 책 원고를 작년 연말 원안위에 납품했다. 여태껏 가타부타 아무 연락이 없다고 한다. 탈원전 선언 정부에서 원안위 예산으로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sh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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