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시각에 따르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생존, 즉 국가안보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외교와 군사가 '하이 폴리틱스'의 영역에 속하고, 나머지는 '로 폴리틱스'에 불과하다. 현대의 시각은, 민주국가일수록, 다원적이다. 국가안보도 중요하지만 사회와 개인의 안보도 중요하며 따라서 경제는 물론 복지와 환경 역시 '하이 폴리틱스'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이 폴리틱스'의 통념에 따르자면 대통령이 미세먼지 를 주된 관심사로 둘 필요는 없고 이는 아랫사람이 다뤄야 할 '낮은 일'에 속한다.
반면 '로 폴리틱스'의 격상에 주목한다면 미세먼지야말로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가 되어야 할 '높은 일'이다. 그렇다면 미세먼지는 왜 대통령의 국정 최우선 순위로 자리매김되어야 하는가?
첫째, 미세먼지는 각종 질병과 암, 조기사망까지 일으키는 치명적 요인으로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국민의 생명을 지킬 것을 대통령의 최우선 책무로 명시하고 있는 만큼 대통령은 당연히 이를 국가안보에 준하는 비상한 수준으로 다뤄야 한다.
둘째, 작금의 악화된 미세먼지는 중국은 물론 북한의 '외부요인'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항간에서는 '외적의 침략'과 그 속성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대처가 중요하지만 어떻든 이에 대한 '외치(外治)'는 당연히 대통령이 주도해야 한다.
셋째, 미세먼지의 내부 요인은 산업과 에너지, 교통과 소비,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경제활동 전반에 기인하는 것으로 종합적 '내치(內治)'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 면에서 '힘없는' 환경부에 모든 책임을 묻기보다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로 나서서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처에 상응하는 책임과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넷째, 미세먼지는 이 시대 최고의 글로벌 리스크로 손꼽히는 기후변화와 맞물려 있는 만큼 국제사회와의 고차원적 공조가 긴요하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글로벌녹색기구 의장에게 '큰 역할'을 부여하자고 제안한 것은 그러므로 타당한 제안이며 청와대가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도 고무적이다(하지만 유엔을 비롯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같은 국제기구가 원자력을 저탄소 에너지로 권유하고 있는 마당에 원전은 폐기하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주범인 석탄발전을 오히려 늘린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해야 할까? 탈원전 정책기조의 수정은 대통령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 그래야 반 전 총장도 움직일 공간이 생긴다).
다섯째,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KIST 원장을 지낸 문길주 미세먼지 특위위원장은 "미세먼지와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이 주된 요인"이라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공동의 책임의식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에게 이런 불편한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국가리더십의 요체라는 것이다.
한국 정치의 속성은 '남 탓'인데 과연 '우리 탓'이라는 정치가 성립될 수 있을까? 현대문명의 위기를 성찰한 위르겐 하버마스는 환경의 영역은 "좌우 이념을 초월하는 생활세계(life world)의 문법에 따르는 새로운 정치를 요구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뒤늦었지만 국회가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그러므로 환영할 일이다. 대통령이 한발 더 크게 나설 차례다. 취임하면서 청와대 안보실을 만들어 한반도 문제에 '올인'한 것도 중요하지만 미세먼지와 같은 생활세계에 상응하는 관심과 정성을 기울였다면 시민의 분노와 불안 그리고 불만은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거국적 리더십과 범사회적 거버넌스 구축에 앞장서주기 바란다.
[김상협 카이스트 녹색성장대학원 초빙교수·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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