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기후변화 총회와 한국의 석탄국가 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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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이번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4)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석탄의 반란'이었다. 시작부터 그랬다. 폴란드는 전체 에너지의 80%를 석탄에 의존하고 있으며 개최지인 카토비체 역시 유럽의 대표적인 탄광 도시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개막 연설에서 "200년 이상 쓸 수 있는 석탄을 안 쓰는 것은 어렵다"고 초를 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친환경 석탄' 홍보에 열을 올리며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와 '화석연료' 연대를 구축했고 석탄 수출국 호주도 여기에 동조했다.

하이라이트는 독일이었다.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의 선풍을 일으키며 세계적 칭송을 받아왔던 독일이 비정부기구 국제연합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로부터 '오늘의 화석상' 수상 국가로 선정된 것이다. CAN은 독일이 202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선언한 것을 그 사유로 손꼽았다. 사실 독일은 '탈원전' 기치 아래 재생에너지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가장 더러운 화석연료로 지목한 갈탄에 대한 의존도가 무려 25%에 육박한 상태다. 독일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2022년까지 탄소 제로인 원자력을 완전히 퇴출하기로 하면서 그 공백의 상당 부분을 탄소 함량이 가장 높은 갈탄이 메우며 온실가스 감축에 역행했기 때문이다. 올해 독일 연방정부가 실시한 감사에서는 유럽 최고 전기료를 지불하면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은 이를 두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기후 총리'의 명예를 누려왔지만 독일의 실상은 '석탄 중독'이었다"고 꼬집었다.

13일 카토비체 현지에서 필자와 만난 스베냐 슐체 독일 연방정부 환경부 장관은 "석탄위원회와 조만간 타결을 볼 계획"이라면서도 "탄광노조의 일자리 문제와 석탄 생산 지역의 반발로 석탄발전 축소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같은 날 카토비체 총회장과 로비 앞에서 국내외 환경단체는 '한국은 기후 악당'이라는 팻말과 함께 '석탄 투자 그만하세요(President Moon Jae-In, No More Coal)'라고 국·영문으로 적힌 플래카드 시위를 벌였다.

독일을 모델로 삼아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충'에 나서고 있는 한국이 이런 비판을 받는 이유는 석탄발전과 온실가스에서 독일과 같은 역행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발전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31%에서 2017년 26.8%로 줄었고 올해 들어 23% 수준까지 내려갔다. 반면 석탄발전은 2016년 36%에서 올여름 43%를 넘어섰는데 이로 인해 온실가스는 증가 일로다. 온실가스정보센터의 잠정 집계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6억9000만t(CO2eq) 안팎에 머물던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은 2017년 7억2600만t으로 늘어났으며 올해에는 7억4000만t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실가스정보센터 관계자는 "이 같은 증가세는 석탄에 기인한 것이 무엇보다 크다"며 "올 상반기 석탄발전에 따른 온실가스는 전년 동기 대비 4.7%가량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실현 불가능하고 독일처럼 포기 선언을 해야 할 판이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의 마이크 톰프슨은 이런 조언을 했다. "영국은 탈원전 대신 탈석탄에 총력을 기울여 10년 만에 석탄 의존도를 40%에서 10%대로 줄였다. 저탄소가 에너지 전환의 기본 방향이라는 과학적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재생에너지 확충 정책은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탈석탄 대신 탈원전에 치중한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고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석탄이야말로 '적폐' 아닌가. 이념이 아니라 과학에 바탕을 두고 에너지 정책의 기본을 국민과 함께 다시 수립하길 권유한다. 이대로 가면 다음 정부가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뒤집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 센터장·우리들의 미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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