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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탈원전 4] 원전사고
  • 작성자 박인식 (bec@5483) (DATE: 2017-09-14 05: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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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사고라고 하면 1979년 TMI(Three Mile Island) 원전사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꼽을 수 있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기록을 확인하다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원전사건(nuclear event)을 0등급에서 7등급까지 나누고, 이 중 0~3등급을 ‘고장(incident)’으로 4~7등급을 ‘사고(accident)’로 분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림 참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원전사건이 340회 일어났는데 1등급 고장이 15회, 2등급 고장이 4회, 3등급 피폭이 2회 발생했고 4등급 이상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지질기술자이다 보니 지금까지 원전안전성을 지반안정성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다. 원전사고를 살피는 과정에서 탈원전의 핵심 명분인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건’은 지금까지 건설된 원전 580기(가동 449기) 중에서 한 번도 일어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반안정성 평가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나 역시도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는데 게을렀다. 근거를 확인하는데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한정된 지식과 한정된 지면에 원전사고를 일일이 살펴보기 어려우니 앞서 언급한 세 건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다.

 

1978년 3월의 미국 펜실베이니아 TMI (2호기) 원전사고는 핵연료 재충전 과정에서 운전원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고로 노심이 절반 이상 녹았지만 원자로가 파괴되는 사태는 모면하여 인명피해나 방사능 낙진이 떨어지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고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주민들이 공포에 휩싸여 미친 듯이 탈출했지만 콘크리트 격납용기가 방사능 외부 누출을 억제해 누출된 방사능 수준이 자연 방사선량에 미치지 않아 주민의 피폭피해는 없었다. 당시 카터 대통령은 이 사고를 이유로 원전건설 중단을 선언했고 당시 70기에 달하던 신규원전계획이 백지화되었다. 그 후 오바마 대통령이 원전건설 재개를 선언했지만 공교롭게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 원전건설 반대가 격심해졌다. 미국의 원전건설계획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2호기 옆에 있는 1호기는 2010년에 운전을 재개했다.

 

1986년 4월의 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원자로 가동이 중단될 경우 관성으로 도는 터빈이 얼마나 오랫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시험과정에서 일어났다. 어이없게도 시험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엔지니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험 책임자가 안전장치를 모두 정지시킨 채로 시험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원자로 내부 과열, 내부 증기압 상승에 따른 1차 폭발, 나머지 열이 수증기를 흑연과 반응시킨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체르노빌 원전에는 격납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두 차례에 걸친 대폭발로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의 400배에 이르는 방사능 유출이 일어났다. 이 피해가 얼마나 컸던지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은 이 사고 복구비용이 소련의 붕괴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주장하는 기관마다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BBC 다큐멘터리에서는 방사선 피폭량을 근거로 최소 9천명 이상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사망자는 이 보다 적었다고 보도했다. 그린피스는 2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신체장애자 동맹은 2005년 기준으로 15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했다. 러시아정부는 러시아 피폭자가 145만명이라고 발표했다. 지금도 이 지역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2011년 3월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쓰나미가 원전을 덮쳤고, 이로 인해 (원전운전이 정지된 상태에서) 비상발전기가 침수되어 작동하지 않음으로서 원전이 정전되었으며, 노심 냉각이 이루어지지 않아 노심이 용융되고 원전건물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다수의 원자로가 동시에 녹아내린 최초의 사례이고 이로 인해 태평양을 포함한 일대를 방사능으로 오염시켰다. 이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해안방벽을 쓰나미 최대 높이보다 낮게 설치한 데 있다. 이로 인해 쓰나미가 해안방벽을 넘어 비상발전기가 침수되고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쓰나미 최대 높이를 10m로 상정하여 해안방벽을 설치했고, 사고 당시 최대 높이는 15m였다. 도쿄전력은 2008년에 자체적으로 쓰나미 최대 높이가 15.7m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음에도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문제점과 시사점, 김준섭 국방대학교 교수, 2015.07) 진앙에 더 가까웠던 오나가와 원전은 해안방벽을 충분히 높게 설치함에 따라 파고가 후쿠시마보다 더 높았음에도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심지어 오나가와 원전은 3개월간 피해 주민들의 대피소가 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1,368명이 사망하였다고 언급한 일이 있는데, 이후 일본정부가 항의하자 이는 일본 도쿄신문에서 발표한 ‘원전사고 관련 사망자’를 인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본에서는 지역 민심을 고려해 원전사고 사망자와 원전사고 관련 사망자를 엄격하게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된 세 사례 모두 자연재해가 아닌 관리 잘못으로 발생했다. TMI는 운전원의 착각으로, 체르노빌은 안전절차 위반으로, 후쿠시마는 해안방벽을 충분히 높게 설치하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다. 결국 원전사고는 자연재해 때문이 아니라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아 일어난 것으로 봐야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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