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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모 "英 원전 수주, 한국형 원전 수출역량 확인시킨 대 사건"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2.10 16:21

수정 2017.12.10 16:21

인터뷰-한국원자력계 산증인 정근모 KAIST 석좌교수
한국 원자력분야 최고 원로인 정근모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좌교수(전 과학기술처 장관)는 10일 "영국의 원전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 1위(우선협상대상자 선정)를 한 것은 한국형 원전의 수출 역량을 확인시킨 대단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영국은 1956년 상업 원전을 세계 최초로 가동한 원전 종주국이다. 앞서 지난 6일 한국전력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자인 누젠(NuGen)의 일본 도시바 지분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무어사이드 프로젝트'는 21조원 규모로 잉글랜드 북서부 무어사이드 지역에 원자로 3기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수주가 확정되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이후 처음이다.

정 교수는 이날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전(원전프로젝트 총괄)이 중심이 돼 '팀코리아(한국수력원자력, 한전기술, 민간건설업체, 국책금융기관 등 참여)'가 해낸 것이다.
영국 원전 프로젝트는 전세계 원전 패권에서 상징성이 매우 크다. 우리 원전의 종합적인 경쟁력을 세계에 알리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 등을 역임한 세계 원자력계 석학이자, 황무지였던 우리나라 원전산업 개척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다. 제12, 15대(1990~1996년)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다. 현재 한국전력 고문을 맡으며 한국형 원전 수출을 돕고 있다.

한국형 원전이 영국에서 1순위로 선택된 이유에 대해 정 교수의 생각은 명확하다. 한국 원전은 '확실한 안전성(미국과 유럽기준에 맞는 가장 안전한 원전 시스템)+철저한 공사기간 보장'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영국 원전 우선협상자 선정에서도 UAE 바라크 원전 건설(2009년 수주)에서 공사기간을 지연하지 않고 관리를 잘 한 점에 대해 높은 가산점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정 교수는 "영국이 우리를 선택한 것은 원전이 국내 산업을 넘어 수출산업으로 확장됐음을 다시금 확인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는 2040년까지 유럽·중동·아프리카 등 전세계가 거의 900기의 원전을 가동한다. 50여개국이 원전 소유국이 될 것"이라며 "미래 원전 수출시장은 커질 수 밖에 없으며, 한국형 원전이 이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우선협상자 선정은 중국을 제치고 배타적 협상 권한을 확보했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 정 교수는 "최종 수주까지 영국과 협상할 게 많다. 영국은 까다로운 원전 안전규제가 있는데, 이를 맞추는 데에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또 투자자들에게 (원전 기술, 건설 및 운영, 금융조달 등 모든 면에서) 리스크가 높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건설자금을 국가가 보장한) UAE 원전과 달리, 영국 원전은 우리가 건설비를 조달하고 전기를 팔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방식이어서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안정적인 금융조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부와 유관기관의 협력을 강조했다.

더 나아가 정 교수는 영국 원전 프로젝트가 '한-미 원전 동맹'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최근 한국형 원전 수출을 후방 지원하기 위해 미국에 가서 원전업체들을 만났다면서 "이번 영국 원전 협상자 선정에서 영국과 단짝인 미국(원전업계)의 목소리도 상당히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최대 원전 업체 중 하나인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도시바의 자회사)가 파산보호 절차를 밟고 있을 정도로 미국의 원전 산업이 어렵다. 이런 미국은 우수한 기술력과 관련 산업을 갖춘 한국과 원전 분야에서 동맹 관계가 절실하다. 군사·경제동맹과 같이 '원전동맹'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미국과 원전 협력관계를 유지, 확대하는 것은 국익에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 원전시장은 우리에게 가장 기대되는 시장이다. 정 교수는 "미국은 원전 99기를 가동 중인데, 80여개가 수명연장 시한마저 끝나간다. 이를 대체할 원전이 더 필요하다. 영국 원전 건설에서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고, 유럽권에서 신뢰를 얻는다면 미국시장 진출은 매우 유리하다"고 했다. 특히 세계 원전 규제기관 중 가장 까다롭다고 알려진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을 한국형 원전(APR1400의 업그레이드모델인 APR플러스)이 내년 중에 획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일본도 아직 획득하지 못한 인증이다.

정부의 성급한 탈원전 정책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원전을 수출하면서 국내에서 탈원전하겠다고 하면, 원전을 사 가는 쪽에서 부품조달에 한계가 있지 않나. 설계 개선에 문제가 없나 등 여러 의문을 가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그는 "탈원전 정책이 우리의 특별한 여건(한정된 좁은 국토, 도시 인구 밀집 등)을 생각하고, 기후변화협정 의무 이행 등을 모두 고려해서 에너지정책을 마련한 게 아니다. 과거의 반(反)원전 생각을 중심으로 반영한 성급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이 원전 수출 강국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원전 산업의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 교수의 확고한 신념이다. 그는 "원전을 잘 아는 인력이 더 많이 양성되고, 원전 기자재·서비스 중소업체들도 건강하게 성장해야 한다.
원전을 어느 수준으로 가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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