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LOUNGE] 김종갑 한국전력 신임 사장 | 민관 두루 거친 해결사…원전 수출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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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생/ 성균관대 행정학과/ 동 대학원 행정학 박사/ 인디애나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과정 수료/ 17회 행정고시/ 2004년 특허청장/ 2006년 산업자원부 제1차관/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대표/ 2011년 한국지멘스 회장/ 2018년 한국전력 사장(현)
이변은 없었다. 넉 달간 공석이던 한국전력 신임 사장에 세간의 예상대로 김종갑 전 한국지멘스 회장(67)이 선임됐다. 선임이 확정된 지난 4월 10일 한국전력 주가 등락 폭은 0.6%. 예정된 인사라는 반응으로 해석된다. 에너지 전문가 출신인 그가 주는 안정감으로도 읽힌다.

한국전력 역사상 두 번째로 최장수(1817일 재임) CEO였던 조환익 전 사장의 존재감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다. 하지만 김종갑 사장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경영의 달인이다. 이번 사장 선임에서 가장 강점으로 평가된 것은 에너지 분야에서 민관을 다 거쳐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 그간 한전 사장이 산업부 출신 관료나 민간기업 경영인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양수겸장 카드로 평가된다.

행정고시 17회 출신으로 특허청장과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을 지낸 그는 이후 민간기업에서만 10년 이상 CEO를 지냈다. 2007년부터 4년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사장과 이사회 의장, 2011년부터 7년간 한국지멘스 회장을 역임했다. 지멘스가 1960년대 한국에 진출한 이래 50여년 만의 첫 한국인 대표였던 데다, 지멘스 해외 지사 중 유일하게 회장 직함을 받았을 만큼 경영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전력 사장에 출사표를 내고도 최종 선임 하루 전인 4월 9일까지 한국지멘스로 출근하며 경영 공백을 최소화했다.

조환익 전 사장이 지난해 말 사임한 탓에 한국전력은 4개월간 수장이 공석이었다. 때문에 밀린 과제가 산적하다. 당장 한국전력 임직원들에 대한 밀린 인사부터 해야 한다. 정기 인사가 늦어지고 있는 탓에 업무 계획 수립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무엇보다 에너지 전환 국면에 대한 새로운 비전 제시가 시급하다. 그간 한국전력이 호실적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탈원전·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로 에너지 정책을 전면 수정했다.



▶정통 관료 출신 CEO만 12년째

지난해 4분기 ‘적자’ 돌아선 한전

사우디·영국 원전 수출 활로 될까

원자력보다 발전 단가가 비싼 석탄, LNG,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게 되니 비용이 급증한 것은 당연지사. 한국전력이 지난해 석탄, LNG,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구입하는 데 쓴 비용은 전년 대비 각각 2조7819억원, 2조543억원, 3015억원 더 늘었다. 반면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 구입 비용은 같은 기간 1조9229억원 줄었다.

상황이 이렇자 재무 상태가 말이 아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매출 59조8149억원, 영업이익 4조9532억원, 당기순이익 1조593억원을 올렸다. 매출은 2016년보다 0.6% 감소하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무려 58.7%, 78.9% 급감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에는 영업손실 1294억원을 내며 18분기 만에 적자전환했다. 2016년 약 6만3000원에 달했던 회사 주가는 4월 11일 약 3만5000원으로 2년 만에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물론 공기업인 만큼 수익성이 지상 과제는 아니지만 경영 효율화를 통한 재무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강승균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한전의 영업이익은 4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0.7% 감소할 전망이다. 원전 이용률이 71.8%로 지난해보다 2.6%포인트 낮아져 민간에서 구입할 전력량이 5.4%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원전 비중을 늘리기에는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 의지가 워낙 뚜렷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시장성과 공공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 업계 관계자는 “산업자원부 차관과 한국지멘스 회장을 모두 경험했으니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 수장으로서 정부와 시장의 니즈를 잘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운신의 폭이 좁은 상황에서 돌파구로 기대되는 것은 ‘원전 수출’이다. 한국전력은 우리나라의 원전 수출 사업을 총괄한다. 그러나 지난 4개월간 수장이 공석이다 보니 수출 사업에도 제동이 걸렸다. 백원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3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하며 원전 세일즈에 나섰지만 한전 사장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제 신임 사장이 취임했고 조만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사업자 입찰·예비 사업자 발표가 이뤄질 전망이어서 김 사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40년까지 원전 16기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어 원전 수출 사업에서 꼭 뚫어야 하는 시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 번 원전 사업자로 선정되고 나면 다음 원전 수주전도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다.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 여부가 김 사장의 경영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이닉스반도체 CEO를 지낸 경험도 ‘한전 구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다. 그가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직후 회사는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설상가상 2008년 금융위기까지 닥치자 그는 수술에 들어갔다. 임원 수를 106명에서 65명으로 줄였고 무급휴가·복지 반납·임금 삭감 등을 단행했다. 그러면서도 R&D 투자는 매출 대비 5%에서 11%까지 끌어올리며 회사의 핵심 경쟁력을 키웠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승승장구하는 것은 당시 이 같은 구조조정 작업이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한전에서 그는 어떤 경영 스타일을 보여줄까. 주변에서는 한국지멘스에서 보여준 ‘외유내강의 부드러운 리더십’이 발휘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친다.

한국지멘스 관계자는 “평소 직원들에게 권위의식 없이 겸손하고 소탈하며 친근한 모습으로 대하고 직원들의 주인의식을 강조했다. 연탄 배달, 배식 봉사, 초등학생 대상 과학 교육 프로그램 등 회사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에도 매년 직접 참여하며 솔선수범했다. 그러면서도 업무적으로는 추진력 있고 강한 면모가 드러났다. 전력·가스사업본부 산하 솔루션 사업부의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역할을 담당하는 ‘지멘스에너지솔루션즈’를 한국에 적극 유치한 게 그 사례다. 한국법인은 전 세계 매출의 85% 이상을 담당하는 30개 선도국가(Lead Country) 중 하나로 선정돼 위상을 높였다. 그는 진정한 경영인은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경영이 아닌, 회사의 미래를 그리는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한국지멘스에서 윤리경영에도 앞장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그는 재임 기간 동안 국내 반부패 기업문화 확산을 위한 ‘동북아 기업윤리학교(NABIS)’ ‘페어플레이어클럽(Fair Player Club) 서약식’ 등 본사로부터 후원금을 지원받는 부패 근절 프로젝트를 꾸준히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전문가들은 원전 수출과 함께 정부와의 소통을 통한 원전 가동률 적정 수준 유지를 김종갑 사장의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최근 국내 원전 가동률은 계획예방정비로 일부 원전 가동이 중단된 탓에 60%대까지 떨어졌다. 2016년 상반기 90% 안팎에 달했던 데 비하면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다.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에 비해 낮은 수준인 전기요금 인상도 숙제다.

강동진 현대차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원전 가동률이 회복 중이고 최악은 지나고 있어 보이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영국 원전을 수주할 경우 한국전력에 대한 재평가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며 “단, 향후 해외 원전 사업 추진 시에는 실적 악화 지속으로 인한 재무구조 불안정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는 전기요금 정상화의 명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허민호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원전 정비 일수가 추가 확대될 가능성 등 정책 불확실성이 남았다. 에너지 전환, 사회적 비용 등 중장기적으로 연결 기준 비용 증가도 명확하다. 구조적인 실적 개선을 위해서는 원가 상승을 반영한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4호 (2018.04.18~04.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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