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E와 RE100 … 탄소중립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Science in 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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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핵심 반도체기업인
ASML의 목표는 '탄소중립'
원자력 통해 '무탄소' 도전
한국, 재생에너지 비중 낮아
RE100 실천 사실상 어려워
무탄소에너지 CFE가 대안


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반도체 장비회사인 네덜란드의 ASML이 '2040년 탈원전'을 선언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誤報)였다. ASML이 탈원전 폐지를 선언한 윤석열 정부에 직격탄을 날렸다는 해석도 믿기 어렵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슈퍼 을'이라도 민간 기업이 주권국의 주요 에너지 정책을 섣부르게 비판하는 일은 상식을 벗어난다.

RE100(재생에너지 100%)의 공식 회원사도 아닌 ASML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은 주요 고객사를 포기해버릴 만큼 재생에너지에 집착할 이유도 없다.

ASML이 지난 2월 14일 공개한 '2023 연차보고서'에서 밝힌 것은 사고의 위험이 있는 원전을 포기하겠다는 '탈원전'이 아니라 2040년까지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이산화탄소의 순(純)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는 '탄소중립(net zero)'이었다. 자사 생산 시설에서 직접배출(scope 1)과 간접배출(scope 2)은 물론이고 자사 장비를 사용하는 고객 기업(scope 3)의 순배출까지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ASML이 '재생에너지(renewable)'를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자사 생산 시설에서는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를 적극 이용하겠다고 밝혔다. ASML 장비를 사용하는 대만의 TSMC 등이 체결한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PPA)을 높이 평가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ASML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네덜란드·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량은 2022년 기준으로 9%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우리 반도체 기업에는 대만과 같은 PPA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우리의 열악한 재생에너지 환경을 무작정 무시할 수도 없다. 중위도 지역에 위치해 일조량이 캘리포니아의 65%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절적 변동도 심각하다. 수력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밀도 또한 높다. 태양광 설비의 평균 가동 시간은 2.6시간에 지나지 않고, 가동률이 98%를 기록하는 제주 탐라해상풍력단지(30㎿)의 평균 전력생산 효율도 35% 수준이다. 경제성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우리의 재생에너지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버렸다. 풍력 설비가 넘쳐나는 제주와 태양광 설비가 몰려 있는 전남·경남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업자의 반발에도 계통 안정을 위해 출력을 강제로 제어할 수밖에 없다. 전력 소비가 줄어드는 봄·가을에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에 대(大)정전을 걱정하고 있다. 남이 장에 간다고 우리도 거름을 지고 무작정 따라나설 수는 없는 형편이다. 우리의 지역적 현실을 무시한 에너지(전력) 믹스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모든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평균' 에너지 믹스는 환상일 뿐이다.

지난 대선 후보의 토론회를 통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RE100은 영국의 '더 클라이밋그룹(TCG)'이라는 비영리단체가 2014년에 시작한 민간 캠페인이다. 기업이 스스로 정한 기한 안에 100% 재생에너지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전부다. 현재 전 세계 428개 기업이 마케팅 전략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정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캠페인이다.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의 표현으로 RE100이 기업에는 매력적일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활동을 전기에 의존하는 정보·통신·금융·서비스업은 더욱 그렇다. 냉난방·수송·조명 등 제한된 영역의 에너지만 전기화하면 RE100의 목표를 비교적 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RE100은 기업에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스스로 태양광·풍력 설비를 갖추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극단적인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이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도 여전히 설익은 미래 기술이다.

연중무휴 하루 24시간 최고 품질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반도체 기업에 RE100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심각한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강력한 탄소중립을 추구하는 ASML이 선뜻 RE100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다.

국가 차원에서 RE100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기술력으로 RE100은 100% 전기화를 요구한다. RE100은 국민 생활과 산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전기로 바꿔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뜻이다. 전기화 비율이 20% 수준인 우리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전기화가 불가능한 제철·시멘트·정유·화학산업은 통째로 포기해야 한다. 정부가 언제까지나 재생에너지에 세금을 쏟아부을 수도 없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갖춘 원자력 기술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위험하다고 포기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오히려 안전을 위한 기술과 제도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도전적 자세가 필요하다.

ASML도 '탄소중립'을 위해 가장 확실하게 검증된 원자력을 이용하는 우리의 '무(無)탄소 에너지(CFE) 이니셔티브'를 애써 거부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원자력은 이미 유럽연합(EU)의 '유럽형 녹색분류체계(EU 그린택소노미)'에도 포함돼 있다. CFE 이니셔티브는 유엔이 추진하는 지속가능목표(SDG)에 포함된 '연중무휴 무탄소에너지협약'(24/7 CF100)과도 어울리는 것이다. 외국 기업의 연차보고서를 핑계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볼썽사나운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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