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안전한 SMR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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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9. 오전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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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1. 2022년 6월 오스트리아 빈, 국제원자력기구(IAEA) 회의장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33개국에서 참석한 원자력 규제기관과 산업체 관계자 125명으로 꽉 찼다. IAEA가 소형모듈원자로(SMR) 안전기준의 국제 표준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개최한 첫 회의였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원자력에서 안전과 안보는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보해야 한다”며 “이 회의는 SMR 안전기준 마련을 위한 빠르고 정확한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AEA가 SMR의 안전성 마련에 글로벌 협업이 필요함을 처음으로 공식화한 장면이었다.

#2. 올해 3월 미국 메릴랜드주 록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매년 개최하는 원자력규제정보콘퍼런스(RIC)에서는 '국제 협력을 통한 SMR의 안전성 증진'이라는 주제로 별도 세션이 열렸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영국 원자력규제청(ONR),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CNSC)는 SMR의 안전성을 세 나라가 공동으로 검토한다는 내용의 삼자 간 협력약정(MOC)을 체결했다.

SMR의 안전기준을 만들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이 개발 중인 SMR은 80여종. SMR 개발에 속도가 나면서 세계 원자력 규제기관들도 바빠졌다. SMR이 기존 대형원전과는 다른 새로운 설계 개념이 적용되는 차세대 원자로인 만큼 안전기준도 새롭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SMR이 설계되더라도 각국의 안전규제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세상에 나올 수 없다. SMR의 성공이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는 데 달려있다는 뜻이다. 각국의 원자력 규제기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안전기준 개발에 힘을 모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도 SMR 안전규제 체계 마련에 있어 국제 레이스에 뒤처지지 않는다. 2022년 IAEA 회의 참석 당시 미국, 캐나다, 프랑스 규제기관과 각각 양자회의를 열고 SMR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미국 NRC와는 SMR 분야의 협력 확대 등을 논의했고, 원안위와 NRC 정례 회의에 지난해부터 SMR이 신규의제로 포함돼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원안위에 '러브콜'을 보냈다. UAE는 한국이 수출한 바라카 원전을 가동 중이다.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열린 '제5차 한국-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고위급협의회'에서 UAE 연방원자력규제청(FANR)은 원안위에 기존 대형원전뿐만 아니라 SMR에서도 안전규제 협력을 요청했다. 체코도 원안위와 SMR 안전규제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지난해는 국내 SMR 안전규제 체계 마련의 대장정을 시작한 의미 있는 해였다. 지난해 4월 'SMR 안전규제 방향 선포식'을 열고 'SMR이 높아진 기술 수준에 걸맞은 최상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제 대원칙을 공표했다.

'SMR 안전규제 방향' 주요 내용

원안위가 선제적으로 안전성 방향을 마련해 개발자에게 제시하고, 이를 통해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모든 원자력 규제에 적용하는 기본원칙을 SMR에도 예외 없이 적용하고, 기존 규제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양한 평가방식을 활용해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확인함으로써 SMR이 최상의 안전성을 확보하도록 하겠다는 대국민 약속도 했다.

원안위의 SMR 규제 대원칙은 국제적으로도 큰 호응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열린 국제원자력규제자협의회(INRA)에서 SMR 안전규제 방향을 영문 안내서로 제작해 9개 회원국에 제공했다.

INRA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등 세계 주요 9개 원전국의 규제기관장들로 구성된 협의체다. 프랑스는 한국의 SMR 안전규제 방향을 높게 평가했고, 일부 국가는 영문 안내서를 추가로 요청했다.

SMR 안전규제 방향을 발표한 지 1년. 원안위는 국내에서 개발 중인 혁신형SMR(i-SMR)의 인허가에 대비해 사전설계 검토를 진행 중이다. 사전설계 검토는 SMR의 안전기준을 철저하게 검토하면서도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개발자가 규제기관에 인허가를 신청하기 전 초기 개발 단계부터 SMR 설계를 검토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개발자의 시행착오를 줄여 안전성은 높이고 심사의 효율성도 커진다.

미국 NRC는 '사전신청검토(Pre-application Review)', 영국 ONR은 '일반설계평가(Generic Design Assessment)', 캐나다 CNSC는 '공급자설계검토(Vendor Design Review)'라는 이름으로 사전설계검토를 운영 중이다. 현재 NRC는 홀텍(Holtec International)의 SMR-300과 GE히타찌의 BWRX-300 등에 대해 사전 인허가 검토를 진행 중이다.

올해 원안위의 목표는 안전을 위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SMR 개발자가 안전한 SMR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게 하겠다. 도로에 칠해진 분홍색, 초록색 노면 색깔 유도선이 운전자에게 경로를 안내하는 것처럼 개발자가 SMR 개발이라는 장거리 운전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또한 아는 길이라도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끌어나가겠다.

SMR의 안전성 확인을 위한 규제체계 마련은 개별 국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원안위도 여러 국가의 규제기관과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을 이어가며 원전 안전규제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필자〉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KAIST에서 핵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과학기술처 원자력개발과에서 공직을 시작했고, 교육과학기술부 핵융합연구과장, 원자력안전과장을 거쳐, 2011년 원자력안전위원회 출범 이후 안전정책국장, 기획조정관 등을 지내며 원자력에 대한 전문성과 행정에 대한 지식을 두루 겸비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변인과 국립중앙과학관장을 지내 소통 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21년 12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돼 국내 원자력·방사선 안전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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