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우리도 사용후핵연료 '재활용'한다…고준위방폐물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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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3.14. 오전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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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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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 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정부가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을 추진한다. 원자력발전의 부산물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지하 500m에서 인간과 영구 격리해야 하는데 처리·소각 기술을 활용해 다시 연료화하고 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목표다. 핵 연료 주기가 늘고 고준위방폐물 양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다만 '핵 비확산' 보증과 미국의 동의는 숙제다.

13일 본지가 입수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소각 분야 로드맵'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2026년까지 관련 분야 기술을 확보하고 2034년까지 실증시설 구축, 2038년까지 실증을 완료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로드맵의 핵심은 사용후핵연료 처리·소각 기술의 개발·실증이다. '처리' 과정을 거쳐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재사용이 가능한 연료로 만들고 이를 원자로에 넣고 에너지화할 수 있는 '소각' 과정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원전에 쌓여만 가는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최종 처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설정한 처리·소각 분야 필요 세부기술은 137개인데 84개가 현재 미확보 기술이다. 구체적으로 처리 35개, 소각 49개 기술이다. 실증추진에 필요한 기술 수준이 100%라면 국내 처리 기술은 약 71%, 소각 기술은 58% 수준이다.

처리 과정의 시작은 '파이로 공정기술'이다. 사용후핵연료 내 핵종을 특성별로 분리하기 위한 단위공정에서 발생하는 방폐물을 처리한다. 현재 국내 기술력으로 '모의핵물질'을 통해 파이로 전(全)공정을 검증한 상태다.

파이로 시스템 설계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과정에 대한 공정 안전조치, 핵물질 전용·오용을 방지하는 대비책 등을 포함한 파이로 실용화시설 설계 기술을 의미한다. 선진국 대비 안전조치 기술은 75%, 시설설계기술은 70% 수준으로 파악된다.

처리 과정을 거친 사용후핵연료를 에너지화하는 단계인 소각 과정의 경우 크게 △소각로 금속연료 기술 △소각로 설계 및 검증 기술로 나뉘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핵연료 제조 기술은 실증 기준 대비 50% 수준이다. 소각로 계통설계 기술은 35% 수준으로 집중 투자가 필요하다.

한편 기술 확보와 시설 구축 등과 별개로 파이로 기술 활용 등에 대한 국제사회 설득은 숙제다. 핵물질이 핵무기로 사용되거나 핵폭발 장치 등 군사적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한 감시, 사찰 등 일련의 검증 활동이 필요하며 종국적으로 핵 비확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에 대해 미국 등 동맹국의 신뢰가 필수적이란 의미다.



핵무기와 '다른' 처리 기술 확보…동맹·국제사회 신뢰 필요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부담을 낮춘다. 사용후핵연료 부피와 독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소각 기술을 갖추기 위해선 미국을 비롯 국제기구와 공조가 필수다. 사용후핵연료라는 처지 곤란한 원전 부산물에 대해 '재활용'이라는 실질적 방법을 제시함과 동시에 핵물질의 무기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원전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2011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 과정의 하나인 파이로 기술의 △기술성 △경제성 △핵비확산수용성 등을 확인하기 위한 한·미 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를 수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초로 산화물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한 4㎏/회 규모의 파이로 공정의 검증을 완료했다.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2013년부터 JFCS 안전조치실무그룹에 직접 참여해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한 파이로 공정의 모니터링과 핵물질 계량, 물질수지 분석 등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연구단계에서 동맹국을 포함해 국제기구와 협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국내에서 파이로 기술관련 실증 시설 건축과 활용을 위해선 국의 신뢰와 동의가 필요하다.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한국은 미국의 사전 동의를 받지 않고도 사용후핵연료를 국내 시설에서 부분적으로 재처리해 일부 연구 활동을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지만 실증과 활용은 다른 문제다. 미국의 동의가 없다면 관련 기술 개발 완료 이후에도 실증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부가 처리·소각 기술에 대한 개발 과정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대중과 국제사회에 공개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이유다. 특히 기술개발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선도국과의 국제 공동연구, 공동 프로젝트 개발을 지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사용후핵연료에 재활용에 대한 선진국의 경쟁은 치열하다. 에너지 안보 차원의 접근이며 소형모듈원전(SMR)을 비롯해 원전 시장이 점차 확대, 세분화 되는 상황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최종 처분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어서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 처리 후 고속로에서 소각시키는 순환형 핵연료주기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지난 2022년에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분 부담과 환경적 영향을 줄여 방폐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혁신기술개발 사업인 'Converting UNF Radioisotopes Into Energy (CURIE)' 프로그램을 시작해 관련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자국 내 원자력개발기구(JAEA) 등을 중심으로 후쿠시마 사고에서 손상된 핵연료를 파이로 공정기술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개발 추진을 검토 중이다. 프랑스는 습식처리 기술을 이용한 사용후핵연료의 부분 재활용 추진 중이다. 장기적으로 반복 재활용과 완전 재활용 목표로 핵확산 저항성이 높은 선진 처리기술과 고속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리·소각 기술은 현재 가동 중인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최종 처분에 대한 미래세대의 짐도 덜어줄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동의와 지지 아래서 관련 기술 개발과 실증을 완료한다면 미래 국가먹거리 산업으로도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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