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미래 산업의 핵심, 동위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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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지난 1월 20일 일본의 탐사선 슬림이 달 착륙에 성공했다. 이로써 일본은 세계 다섯 번째 달 착륙 국가가 됐다. 다만 착륙 과정에 기체가 기울어져 태양전지를 사용해 전기를 공급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그래서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가 스스로 60점이라고 박하게 평가하긴 했으나, 달에 탐사선과 로버를 보내 무사히 착륙시킨 것 자체로 대단한 성취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약 한 달 만에 이번에는 미국 기업 인튜이티브 머신스에서 탐사선 오디세우스를 달에 착륙시켰다. 오디세우스는 옆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된 임무 수행은 어려워 보인다. 그렇더라도 민간 기업 최초의 달 착륙 성공이라는 타이틀은 가볍지 않다. 앞으로는 달, 그리고 그 너머 우주까지 더 많은 민간 탐사선이 북적일 것임을 알려주는 전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달 표면에서 슬림이나 오디세우스처럼 에너지 생산을 햇빛에만 의존하면 많은 제약이 붙는다. 지구와 달리 달의 하루는 29.5일이다. 그중 절반은 기온이 영하 170도까지 떨어지는 아주 추운 밤이 지속된다. 밤을 보내고 나면 모든 장비가 얼어붙어 다시 해가 떴을 때 재가동하리란 보장이 없다. 슬림은 운이 좋게도 휴면에서 깬 뒤 탐사를 재개했지만, 작년에 달 착륙에 성공해 환호받았던 인도의 챤드리안 달 탐사선은 혹한의 밤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반면 1977년에 지구를 떠난 보이저 2호는 거의 반세기에 걸쳐 태양계 밖까지 진출하며 지금까지도 데이터를 보내고 있다. 화성 넘어 먼 우주에서는 태양 빛이 약하므로 태양전지 대신 동위원소 전지를 사용했던 것이 비결이다.

동위원소는 같은 원자번호를 가졌지만, 원자핵을 구성하는 중성자의 숫자가 서로 다른 원자를 일컫는다. 이미 알려진 동위원소만 수천 종에 달한다. 이 중에는 아주 오랜 기간 열을 내는 플루토늄-238과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있는데, 동위원소에서 발생한 열을 전기로 변환하면 수십 년간 탐사선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달에 가는 임무에도 동위원소 전지를 탑재하면 좋겠지만, 무게가 늘어나면 발사 비용도 늘어나므로 임무의 성격에 따라 잘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어쨌든 인류의 관심이 점차 먼 우주로, 그리고 더 오랜 기간 임무를 수행하는 쪽으로 향하면서 동위원소 전지 사용이 늘어날 것임은 자명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앞서 언급한 플루토늄 같은 민감한 핵물질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미리 대안을 준비해 둬야 한다.

우주 탐사 외에도 동위원소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병원에서는 동위원소를 함유한 의약품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암 진단을 위한 양전자 단층 촬영을 할 때는 산소-18 동위원소가 들어있는 물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 H2O의 O가 산소-18일 확률은 0.2%에 불과해서, 농축 과정을 통해 산소-18의 비율을 높인다. 이 외에도 최근 루테튬-177이 들어간 화합물이 신경내분비종양의 치료제로 승인을 받는 등 병원에서 사용하는 동위원소의 종류는 늘어나고 있다.

산업적으로도 동위원소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과거엔 여러 동위원소가 섞여 있어도 화학적 불순물이 없으면 순수한 물질로 쳤지만, 이제는 단 하나의 동위원소만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 기업이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를 이용해 더 밝고 오래가는 제품을 개발, 판매 중이며, 양자 컴퓨터에서 잡음을 극도로 낮추기 위해 동위원소를 사용하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 동위원소 기술에 투자한 선도 국가 중 하나이다. 현재 부산에 동위원소를 대량 생산할 시설을 건설 중이며, 대전에는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해 새로운 동위원소를 찾는 순수한 기초과학 연구도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최근 한 중국 기업이 놀라운 성능의 동위원소 전지를 개발했다고 밝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홍보하는 대로 성능이 나오는지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동위원소를 두고 경쟁은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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