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만약, 원전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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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06. 오전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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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훈 카이스트 교수
800조의 돈이 한 번의 선택으로 생겼다면 잘한 결정일까?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이 1978년 고리1호기 이후로 지금까지 생산한 전력량이 약 4.4조 ㎾h(킬로와트시)가 된다. 이는 140원/㎾h 내외의 한전 전력판매 단가로 따지면 약 620조 원어치다. 현재 원자력 발전단가로는 230조원 정도이므로 약 390조 원의 한전 이익을 가져온 것이 원자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원자력이 아니라 가스로 이를 생산한다면 1050조 원이 들어간다. 원자력으로 전력생산했을 때와 약 800조 원 차이가 난다. 원자력을 선택함으로써 가스 대비 800조 원의 돈이 거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걸프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번의 에너지 위기에도 우리 전기요금을 안정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2022년 원자력발전단가는 ㎾h당 52원이었고, 이중 천연우라늄의 가격은 2원 정도에 불과하다. 즉 우라늄 가격이 2배로 올라도 원전의 발전단가는 52원에서 54원이 될 뿐이다. 가스 가격이 2배가 된다면 ㎾h당 단가는 쉽게 100원 이상 증가하나 우라늄 가격이 2배가 되어도 2원 증가하는 데 그치므로 표시도 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50여 년 전 원자력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석탄, 석유 등 국제 정세와 맞물려 요동치는 화석연료를 수급하느라 마음 졸이는 지난 40여 년을 보냈을지도 모르고 굴지의 우리 기업들이 오늘날의 모습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800조 원의 돈이 결국 우리 가정과 직장으로 흘러 들어가서 오늘의 부를 이루는 초석이 된 것이다. 게다가 원자력이 아니라 석탄이나 가스 발전이었다면 20~40억 톤의 막대한 이산화탄소가 추가로 배출됐을 것이다. 거기에 극심한 미세먼지로 봄나들이는 꿈도 못 꿨을지 모른다.

15년 전 UAE(아랍에미리트)는 우리의 50년 전 결정과 같은 결정을 했고 우리는 우리 기술로 설계한 원전 4기를 바라카에 건설했다. UAE는 이제 1/4을 원자력으로 공급하게 되었다. 바라카 원전 건설은 전력의 탈탄소 측면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모두 통틀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탈탄소를 추진한 한 예다. 또한 UAE의 최고액권인 1000디르함(35만원 상당)의 화폐 도안으로 바라카 원전이 들어갔다. UAE 국격의 기술이 원자력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충분히 뿌듯해해도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탈탄소 프로젝트를 우리 손으로 이룩한 것이다.

탄소중립으로 빨리 가려면 원자력을 선택해야 한다. 현재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와 신한울 3,4호기가 건설되면 이를 통한 연간 전력 생산량은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태양광 설비로부터 생산되는 연간 전력량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원자력이 가장 빠르다. 탄소중립으로 멀리, 깊게 가려면 원자력을 선택해야 한다. 24시간 공급되던 화석연료를 대체하려면 기본적으로 24시간 솔루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서버, 전기차, 전기 냉난방, 수소생산 등 새로운 전력수요는 폭발하고 있고 그간 화석연료를 태워서 공장에 공급하던 막대한 양의 열도 이제 원자력으로 공급해야 한다. 간헐성 재생에너지만으로는 24시간 공급은 불가능하다. 원자력이 함께 가야 하고 적어도 50% 이상 중추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멀리 가고 빨리 갈 수 있는 원자력의 기여가 50% 이상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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