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03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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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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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농축 우라늄 확보, 발등의 불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1.29 08:30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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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새해 들어 2026년까지의 ‘세계 전력 수급 전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IEA는 전 세계 원자력 발전이 2026년까지 연평균 3% 가까이 성장할 것이며, 2025년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5년까지 전 세계 원자력 발전량은 프랑스의 발전량이 증가하고 일본의 여러 원자력발전소들이 재가동되며 중국, 인도, 한국, 유럽을 비롯한 여러 시장에서 신규 원자로가 상업 가동을 시작함에 따라 2021년에 세운 기록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또 IEA는 2026년 전 세계 원자력 발전량이 2023년에 비해서도 거의 10%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4년에서 2026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29GW의 신규 원자력발전소가 추가로 가동될 예정인데, 아시아,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의 신규 원자력 발전이 주요 성장 동력이 되고 있어 2026년에는 전 세계 원자력 발전량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할 것이라는 게 IEA의 예상이다.

주지하다시피 원자력 발전의 연료가 되는 광물은 우라늄이다. 수요가 증가하다 보니 우라늄 가격 역시 계속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세계 최대 우라늄 생산 업체들의 생산 차질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라늄 가격이 더 뛸 것이라는 전망마저 제기된다. 카자흐스탄은 전 세계에 공급되는 우라늄 가운데 43%를 공급하고 있다. 전 세계 우라늄 생산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카자톰프롬은 카자흐스탄의 최대 광산업체인데, 최근 시설 공사 지연과 황산(우라늄 추출에 사용되는 주요 재료)의 가용성 문제 등으로 내년까지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의 카메코(Cameco)나 프랑스의 오라노(Orano)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결국 공급이 수요를 못 받쳐주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최근 우라늄 가격은 파운드당 106달러 수준으로 지난 16년 만에 최고다. 앞으로의 가격 상승은 더 걱정이다. 씨티은행은 2025년에 파운드당 평균 110달러 수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으며, 제프리 증권도 사상 최고치였던 지난 2007년 6월 가격인 파운드당 136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우라늄 가격이 오르는 것도 걱정이지만 더 큰 문제는 농축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되는 핵연료는 자연 상태의 우라늄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농축된 우라늄을 필요로 한다. 천연 우라늄 내 핵분열을 일으키는 동위원소인 U-235를 추출·분리한 뒤 연료용으로 적절한 수준이 되도록 그 비율을 높이는 과정을 ‘농축’이라고 하는데 상업용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되는 농축 우라늄은 U-235의 농도가 3~5% 정도인 저농축 우라늄이다. 그 비율을 90% 이상으로 높이면 핵무기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농축’이란 과정이 이렇듯 상업적 목적과 군사적 목적으로 모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핵 비확산의 관점에서 우라늄 농축은 엄격한 국제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민감한 기술로 취급 받아 왔다. 따라서 농축을 할 수 있는 사업체도 소수로 한정되어 있다. 현재 주요한 농축 우라늄 생산업체는 프랑스의 오라노, 러시아의 로사톰(Rosatom), 그리고 영국-독일-네덜란드의 유렌코(Urenco) 등 3곳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CNNC는 국내 시장 공급을 주로 하면서 수출 판매를 추진하고 있다. 그 밖에 일본과 브라질에서는 국내 연료 사이클 기업들이 소량의 공급 능력을 관리하고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미 로사톰의 농축 능력이 서방의 오라노와 유렌코의 능력을 합친 것보다 크고, 중국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2025년이면 러시아와 중국의 농축 능력의 합이 서방을 훨씬 능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탈러시아산 가스 움직임이 가속화한 데 반해,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그러나 이미 다수의 국가들이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에 의존하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은 농축 우라늄의 34% 가량을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전쟁 이후 러시아와 대립 구도를 선명히 하며 제재를 강화해 온 미국은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의 세계 최대 수입국이다. 2022년 전체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수출의 42%는 미국으로 향했다.

원자력 발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화석연료에 비해 안정적으로 연료를 공급할 수 있어 에너지 안보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에너지를 둘러싼 지정학 및 지경학적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원자력 발전 역시 연료 공급 측면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농축 우라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원자력 대국인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전략적인 대응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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