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한수원 부채 급증, 기술 개발 재원 축소… 한국 원전 산업 미래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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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발생 없는 원전 수요 증가,
세계 원전 설비 용량 2050년 2배로 늘어
경쟁국들 신기술 개발 나서는데
우리는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도 못 지어
투자 시급하지만 한수원 부채 43조원…
원전 전력 판매 요금 현실화해야



그래픽=이철원

2024년 세계는 원자력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202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22년 371GW 규모이던 세계 원전 설비 용량이 2050년 최대 890GW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크게 위축되었던 원자력이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발생 없이 대량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다시 부각되면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2023년 12월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28차 당사국총회(COP28)에서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 22국이 2050년까지 원전 설비 용량을 3배로 확대할 것을 결의한 것은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에서 배제되던 원전이 역할을 인정받은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기업에 재생에너지 100%로 사용 에너지를 충당하도록 요구하던 ‘RE100′도 원자력발전을 포함하는 무탄소 에너지 100%를 의미하는 ‘CF100′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 2022년 핀란드 녹색당이 원자력발전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이후 유럽에서 원자력 확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최근 개도국을 중심으로 원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많은 국민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대한 원전 수출을 떠올리면서 원전산업이 방위산업과 더불어 수출산업으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역시 원전 르네상스 흐름에 발맞추어 원전의 수출산업화를 국정 과제로 채택하였으며,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역시 2036년까지 해외 원전 10기 이상 수주를 위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전략을 확정하였다.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 등과 비교해 원전의 지속적 건설에 따른 경쟁력 있는 산업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으며, 건설 공기 준수에 따른 건설 비용의 안정적 관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원자력산업은 경쟁 국가와 비교해볼 때 구조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세계 원전 시장에서 최고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업체는 러시아의 로사톰(ROSATOM)이다. 로사톰은 27국에서 73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계 원전 시장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로사톰의 경쟁력은 비용 조달부터 연료, 건설, 설계, 운영, 사용후 핵연료 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수직 계열화하여 일괄적으로 처리한다는 점에 있다. 우리의 경우 원전 건설 및 운영을 담당하는 한수원과 원전 설계를 담당하는 한국전력기술, 원자력연료봉 생산을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연료는 모두 한국전력의 자회사로 수평적 분리 관계다. 신속한 의사 결정과 원활한 업무 협조에 불리한 구조이다. 원전 수출에서 핵심인 연료봉 공급에서도 러시아, 프랑스 등은 정광, 변환, 농축, 성형 가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원전 운영사가 수직적으로 통합하여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고 신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는데 비해 한국원자력연료는 농축 우라늄을 수입하여 이를 성형·가공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의 경우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구조 개편과 더불어 기술력 강화, 공급망 확보 등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현실은 우울하다.

한수원의 부채는 2017년 29조4000억원으로 자본금 대비 114% 수준이었는데 2022년에는 43조3000억원(164%)으로 급증했다. 탈원전 정책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은 축소되었는데 부채는 왜 늘어났을까? 관계 법령에 의해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 관리비, 사용후 핵연료 관리 부담금 및 원전 해체를 위한 충당금 등을 매년 적립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2017년 15조8000억원에서 2022년 26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노후 원전을 해체하고, 사용후 핵연료 처분이 이루어지면 충당금에서 비용을 차감하기 때문에 적립 부담이 감소할 수 있지만 원전 해체는 말만 무성하고 현재까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 건설 역시 첫 단계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도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미래로 미뤄놓으면서 한수원의 충당 부채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원전 확대 정책에 따라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신규 투자도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한수원의 부채는 조만간 200%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 판매액이 상승해야 하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한전은 LNG화력발전에 kWh당 222.53원, 석탄화력발전에는 150.11원, 원전에는 50.81원을 지급하고 전력을 구입하여 150.47원에 전력을 판매하고 있다. 팔수록 한전 적자가 증가하는 이유다. 당연히 한전이 원전에 추가 비용을 지불할 여력은 없다. 국제 우라늄 가격 급등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2022년 말 파운드(454g)당 49달러 수준을 유지하던 우라늄 가격은 올해 1월 95달러를 넘어 2배 상승하였다. 원전 전력 생산 원가는 오르지만 판매 대금은 그대로 유지된다면 한수원의 경영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이 와중에 한수원은 지난 12월 27일 모회사인 한전에 대해 1조5600억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천문학적인 한전의 적자 해소를 위해 한전의 자회사인 한수원은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지만 이 때문에 신규 원전 건설과 차세대 원전 등 미래 기술 개발을 위한 재원은 대폭 축소되었다. 전력 요금을 둘러싼 정치적 결정이 원전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한수원 본사는 경주 시내도, 원자력발전소 근처도 아닌 산 중턱에 혼자 외롭게 서 있다. 본사 건물을 제외하고는 어떤 건물도 없는 고립무원에 위치한 모습은 우리 원자력 산업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가를 반영한 전력 요금 현실화, 중간 처분장 및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 건설 등의 과제를 계속 미루면서 원전 수 출과 원전 강국이라는 구호를 부르짖는 모순은 언제쯤이나 해소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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